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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장면연구회

민주당 정권의 경제정책과 장면 2 - 경제정책의 기조 (1)


1) 경제제일주의의 천명


 
민주당 정권은 출발 직후부터 경제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경제제일주의’를 정책의 지표로 내세웠다. 장면 국무총리는 1960년 9월 30일 민의원 본회의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제부문 행정에 있어서는 사회복지의 증진을 대목표로 하여 급속한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경제제일주의를 실천하려 합니다. 신정부가 기도하는 바는 첫째로, 과거 부패정권이 취해온 관권경제와 불균형한 산업구조 등을 지양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 둘째로 농어촌 중심의 투융자계획을 증대하고 소득증가를 도모해서 위축된 중소기업의 건전한 운영을 조장함으로써 균형적 산업구조의 형성을 촉진하려는 것입니다.[각주:1]

 
 또한 1961년도 예산편성 지침에서는 경제제일주의 정책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4월혁명 과업의 완수와 경제자립의 목표 달성을 촉진하기 위하여 부패된 관권경제를 일소하고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며, 계획성있는 자유경제체제하에 국민경제의 균형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제반 시책을 단계적으로 실현하는 방향에서 … 예산을 편성한다.[각주:2]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경제제일주의 정책은 경제면에서 살펴보면 관권경제의 부패로 인한 산업구조의 불균형을 지양하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도모함으로써 자립적 국민경제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제제일주의는 4월혁명 과업의 완수와 관련되어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은 4월혁명을 계기로 성립된 민주당 정권이 당시의 경제 문제를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1960년 11월 정무원 사무처에서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경제 문제라고 응답하였다. 이를 근거로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경제제일주의는 독자적 정책이 아니라 ‘대중추수주의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각주:3] 그러나 민주당 정권의 경제제일주의 정책의 채택은 출범 직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는 오히려 경제제일주의의 천명이 시대적 과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이 국민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경제제일주의는 나름대로의 현실 분석에 기초하여 해결책을 제시했던 독자적인 정책 방향이었다.

 
민주당 정권에서는 당시를 경제적 위기의 상황으로 진단했다. 김영선 재무부 장관은 1961년도 예산안에 대한 제안설명에서 ‘구정권이 남겨놓은 積蔽’를 官權經濟로 인한 부의 偏在, 경제성장 둔화, 저축과 투자의 부족, 산업구조의 불균형과 농업소득의 低位, 국제수지의 불균형, 원조의 감축, 인플레 요인의 잠복 등 7가지를 열거했다. 특히 그는 당시의 국고 채무가 2,700억환, 정부출자기관의 부채가 413억환이며, 국제수지가 수입 2억8천만불 수출 1천9백만불로 적자폭이 무려 2억 6천만불에 달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국제수지의 역조는 대부분 원조에 의해 보전되고 있는데, 원조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하였다.[각주:4] 민주당 정권은 빚더미에 앉아 미국의 원조로 연명하는 고사 위기의 정부를 인수한 셈이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경제는 여러 정책 부문 중의 하나가 아니라 민주당 정권, 나아가 4월혁명으로 성립된 민주주의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는 문제로 인식되었다.

 
민주당 정권의 경제제일주의는 국방과 외교 분야에도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외교는 ‘경제외교’ 위주의 정책을 취했는데, 여기서 외국으로부터 원조와 차관을 들여오는데 중점을 두게 되었다. 국방정책의 내용은 경제제일주의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장면 국무총리는 1960년 9월 30일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국방과 외교 분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토방위를 위한 군사면에 있어서는 … 두 번째로 군의 조직과 편성의 검토․조정을 하고 인사와 군수체제의 개선을 도모하여 국방 예산의 합리적인 절약을 기하고자 합니다. … 네째로 우방과의 공동 방위의 테두리 안에서 년차적으로 減員을 실시할 계획이며, 이 계획 아래에서 군의 장비를 정예화하도록 추진하고자 합니다.[각주:5]


 이처럼 출범 초기부터 민주당 정권은 경제제일주의를 천명하면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국방비 절감과 군의 減員을 정책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국방 문제를 우방국가 특히 미국과의 공동 방위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해결하고자 하였다. 5.16 군사쿠데타의 배경이 되었던 민주당 정권의 감군 계획은 연차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이었는데, 1961년도 중에 약 10만명을 예정하고 있었다.[각주:6]

 
이러한 감군 계획은 북한과의 체제경쟁을 무력․군사적 측면에서보다 경제력의 경쟁으로 인식이 전환된 것과 관련된다. 1960년 12월에 있었던 종합경제회의에서 김영선 재무부 장관은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번영의 경쟁인데, 남한이 크게 뒤지고 있으므로 이를 따라잡기 위해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운 것이라 했다.[각주:7] 이어 1961년 2월에 작성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수립요강」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그 수준이나 구성비의 국제적 비교에서 알아 볼 수 있듯이 세계에서 가장 뒤처진 단계에 놓여 있다. 이와같은 만성적 정체로서는 당면한 민족적 과제인 승공통일을 可期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정상적인 국제경제적 연대를 유지할 수 없다. … 북한경제는 그 자본재 설비나 산업구조에 있어서 확실히 우리보다 유리한 처지에 있다는 것과 국제경제가 점차로 자유화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情性的 경제활동으로서는 도저히 세계경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하기 어려움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각주:8]


 이렇듯 민주당 정권의 경제제일주의는 경제를 중시한다는 소박한 의미가 아니라 당시의 경제현실을 총체적 위기 국면으로 진단하고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4월혁명의 민주주의 과제와 국가 발전의 기본적 정책 기조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1. 『한국재정40년사, 제1권 예산자료』(한국개발연구원, 1990), 385쪽. [본문으로]
  2. 위의 책, 381쪽. [본문으로]
  3. 김정원, 「제2공화국의 수립과 몰락」, 김성환 외, 『1960년대』(도서출판 거름, 1984), 80쪽. [본문으로]
  4. 『한국재정40년사, 제1권』, 387~388쪽. [본문으로]
  5. 『한국재정40년사, 제1권』, 384쪽. [본문으로]
  6. 「1961년도 예산편성 지침」, 위의 책, 383쪽. [본문으로]
  7. 김용삼, 「김입삼의 경제개발 비사」, 『월간조선』 1999년 4월호, 400~401쪽. [본문으로]
  8. 부흥부 산업개발위원회, 「경제개발5개년계획수립요강」(1961. 2), 7~8쪽. 한국개발연구원 소장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