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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일본 정계의 제2공화국관 2 (정치가 小坂외상) - 高崎宗司 * 〔 〕안은 역주임. ‘일한’, ‘조선’ 등의 용어는 원문 그대로 두었음. Ⅰ. 정치가 - 2. 小坂외상 1960년 7월 19일에 제1차 池田내각의 외상으로 취임한 小坂善太郞(1960년 12월 8월에 성립한 제2차 池田내각에서도 외상으로 유임하고 1962년 7월 18일에 퇴임.)는 일한회담에 적극적이었다. 小坂는 “외교면에서는 아마추어고 吉田茂 전직 수상의 직계인 만큼 吉田-池田외교의 ‘심부름꾼’이 되지나 않을까”하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小坂는 일한관계에 관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8월 13일에 윤보선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小坂는 그 날 중에 각료급 인물을 수석으로 하는 친선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할 것을 발표하였다. 그것에 대한 장면 민주당 최고대표위원(동월 23일에 총리에 .. 더보기
일본 정계의 제2공화국관 1 (들어가는말, 정치인 池田수상) - 高崎宗司 * 〔 〕안은 역주임. ‘일한’, ‘조선’ 등의 용어는 원문 그대로 두었음. 들어가는 말 1960년의 4월혁명을 배경으로 8월 23일에 탄생한 장면 정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 것이었다. ①권위주의로부터의 탈각 및 민주주의 제도화가 지향되고 의회 중심의 정치운영을 실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였다. ②다원적 외교의 추진을 내걸었다. ③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틀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루어질 경제건설이 지향되었다. ④신체제의 구축을 지목하는 다양한 대중운동이 분출했는데 그것들은 반정부운동으로부터 나아가 통일문제를 과제로 삼음으로써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1954년 11월 10일) 미국과 일본은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일본경제를.. 더보기
민주당 정권의 경제정책과 장면 4 - 국토건설사업의 시행 장면 정권의 국토건설사업 구상은 1960년 10월경부터 이루어졌으며, 미국의 대략적인 지원의사를 타진한 후에 본격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하여 11월 28일 국토건설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어 12월에는 추가경정예산에 국토건설사업비로 280억환을 계상하기로 결정하고, 12월 28일 국무원 제147호로 국토건설본부 설치 규정을 공포했다. 1961년 2월 10일에는 제149호로 개정하여 국토건설본부를 설치하였으며, 협조기관을 중앙과 지방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이어 4월 10일에는 ‘국토건설사업특별회계법’을 제정하여 재정적 뒷받침을 확고히 하였다. 장면 국무총리는 1960년 2월 9일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국토건설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더보기
민주당 정권의 경제정책과 장면 3 - 경제정책의 기조 (2) 민주당 정권이 경제제일주의를 지침으로 삼고 추진한 일련의 경제정책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1961년 2월 장면 국무총리는 제1회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자신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했다. 이상 경정예산에 관련하여 중요 시책의 몇가지를 말씀드렸거니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기조는 질서와 발전이라는 2대 명제에 귀착됩니다. 이 2대 명제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창안이 결코 아니고 다만 질서의 재건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업의 지상명령이라고 하겠습니다. 장면 총리가 말하는 ‘질서와 발전’이라는 2대 명제의 의미는 정치․사회적 안정을 통한 경제 발전의 추구를 주로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있어서 정치적․사회적 안정보.. 더보기
제2 공화국 경축사 (1960. 10. 1.) 정의 구현에 진력, 건전한 성장을 희원 이 축전에 모인 우리의 마음이나 새 공화 정부의 백성된 모든 남녀 노소의 마음은, 오로지 민권과 정의를 수호하는 싸움에서 귀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살아 있는 우리로 하여금 이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한 수많은 순국 학도의 영령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엄숙히 고개 숙여 꽃다운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귀한 자녀들을 나라에 바친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커다란 희생은 민족적 과업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제부터 우리는 정치적 혁신과 경제적 발전 및 사회적 정의의 구현으로써 혁명의 요청을 완성해야 할 거창한 임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부면에 있어서 모든 독재적 요소를 제거하고,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제반 기본 인권.. 더보기
국무 총리 민의원에서의 시정 연설 2 (1960. 09. 30.) 내각 책임제 정치하에서 행정부에 부과된 책무를 유감없이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먼저 행정부 내의 기강 확립에 주안점을 두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공무원에 대한 정리 요강을 작성하여 본분을 지키지 못한 공무원을 과감히 정리하고, 적재 적소의 원칙 아래 새로운 일꾼으로 이를 대치하는 한편, 감찰 위원회법, 공무원 재산 등록법 등 강력한 특별법의 시행으로 기강을 바로잡는 동시에, 공무원의 정신 훈련을 통해서 자율적인 확청(廓淸)을 도모하려는 바이며, 경제 제일주의를 지표로 삼는 행정부의 시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전국민의 굳은 결의와 일부 특수층의 자숙을 강조치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의 중요한 시책을 말하자면, 첫째로 국제 외교에 있어서 유엔 가입을 위한 선전 정책의 수립과 이에.. 더보기
국무 총리 국회에서의 시정 방침 연설 1 (1960. 08. 27.) 3부 공무원 재산 등록, 악법 정리로 정치적 혁신 강화 4월 혁명으로 이루어진 새 헌법하의 초대 국무 총리직에 불초 이 사람이 취임하게 되어, 오늘 국무 위원들과 함께 인사의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무한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앞으로 중요하고도 중첩한 당면 문제를 돌파하여 혁명 정신을 구현하고, 당면한 민족적 과제인 경제적 건설을 수행하여야 할 중대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 마지않는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국정을 쇄신하고 새로운 건설의 목적을 달성시킬 과제는 그 내용에 있어서 광범위하기 그지없고, 어떤 부면에 있어서는 비상한 난관을 극복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니 만큼, 짧은 기간 안에 소기의 성과를 완전히 거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본인과 각료 일동은 굳은 결의로써 모든.. 더보기
장면 국무총리 취임 사진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