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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시절

Ⅱ. 부통령 시절 - 민권 승리를 위한 부통령직 사임 4월 18일 데모를 끝내고 귀교하는 학생들을 깡패들이 습격한 사건은 큰 충격을 주었고, 연일 데모가 발생하게 된 것은 자연적인 울분의 폭발이었던 만큼 아무도 이를 막을 자가 없었다.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는 외침은 끊임없었다. 4월 22일 나는 기자 회견을 가지고 비상 사태를 타개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재선거를 주장하였다. 그것은 전국의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원에 따라 선거를 다시 실시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자유당측에서는 이를 응낙할 리 만무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우리가 내각 책임제를 주장하며, 원내에서의 간접 선거를 실시하자고 하는데 다시 돈 들여 총선거를 할 필요가 어디 있오?”라는 주로 한민계 인사들의 반대 의사도 있었다. 정치적인 복선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끝.. 더보기
Ⅱ. 부통령 시절 - 유석 서거와 3‧15 부정 선거 1960년 2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일을 한달 앞두고 나는 또 기구한 운명을 맞이했다. 복부 수술차 도미했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서거(逝去)했다는 비보였다. 선거전이 한창 치열할 무렵인 1월 19일 유석은 기자 회견에서 “앞으로 입원할 생각은 없으며,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선거 유세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연설할 자신이 있다. 장(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입원할 생각은 없으며, 수술 진단 운운은 모르는 일이고, 의사로부터 통고받은 바도 없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1월 22일 조 박사의 주치의는 기자들과 회견하고 “조 박사의 그 위장에 관한 X선 시현(示現)으로 인하여 개복 수술을 즉시 실시할 것을 요한다”는 요지의 진단서가 발표되어, 1.. 더보기
Ⅱ. 부통령 시절 - 잇따른 부통령 후보의 액운 끊임없는 감시 속에서 실권 없는 부통령직에 앉아 있기가 바늘 방석이었다. 이제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59년 10월 26일, 민주당으로서는 입후보자 지명 대회를 열게 되었다.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 박사와 함께 러닝 메이트로 선출되기까지에는 약간의 잡음이 당내에서 떠돌았다. 소위 신‧구파의 세력 다툼이 조금씩 고개를 들게 된 슬픈 사실이다. 실제적으로 민주당 내의 신‧구파 문제는 창당 시에 이미 그 씨가 배태(胚胎)되었던 것이다. 민주당이 결성될 무렵에 한국 민주당의 후신인 민주 국민당은 국회에서 15석밖에 차지하지 못하여, 당시 그대로는 도저히 야당의 구실을 할 수 없었다. 이 민주 국민당이 발전하여, 대(大)야당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신진들과 합세하여 신당을 결성해야 할 운명이었다. .. 더보기
Ⅱ. 부통령 시절 - 청천 벽력 해공 급서(急逝) 5월 5일 5시경 5호 침대에서 해공 선생은 불의의 변을 당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날 새벽 5시경 해공 선생은 일어나신 기척을 내며 “창현아, 뒤지 어디 있냐?” 하고 신창현 비서를 부르는 소리가 나더니 곧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상단 침대에 있던 나도 일어났고, 해공 선생과 마주보는 하단 침대에서 자던 조재천 씨도 잠을 깨서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눴다. 나는 세수를 하려고 세면소에 갔으나 물이 안 나와서 돌아와 물이 없어 세수를 못하였다고 하니, 이때 해공 선생이 “아침 세수는 진주에 가서 합시다” 하기에 “그러지요”라고 대답하고, 얼마 안 있어 보니 해공 선생의 몸 자세가 이상했다. 앞으로 푹 수그린 채 일어나지 못하였다. 나는 무심히 “아이구, 해공 선생 왜 이러십니까?” 하고 해공 선생 곁.. 더보기
Ⅱ. 부통령 시절 - '못살겠다 갈아 보자' 국민의 열렬한 호응과 지지를 받으면서 탄생한 민주당은 이듬해 1956년 제3대 정‧부통령 선거를 맞았다. 창당한지 얼마 안되는 민주당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앙과 지방 조직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 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반드시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의 애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커다란 당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소요되는 경비도 큰 문제였거니와 자유당 정권의 구박과 악착 같은 박해를 받아가며 선거 운동에 나서기란 기적을 바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정권을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은 우리의 철석 같은 신념이었다. ‘못살겠다 갈아 보자’는 민주당의 이 구호는 바로 민심 그대로의 표현으로서 국민의 공감을 얻게 되었다. 이때, 민주당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