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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고(故) 요한 장면 박사 묘비 제막에 붙여 - 이효상

 

이효상(李孝祥, 국회 의장)

 

 슬프다.

 선생이 떠나신 지 벌써 반년이 지남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당신의 모습이 사라지는 듯하옵니다. 세상의 인심이란 이렇게 야박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편 당신이 영원한 행복 속에 들어가 계시니 모두들 안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평생에 닦으신 길은 비록 외롭고 고된 길이었으나, 주님의 성의에 맞갖은 길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었어도 겸손하고 인자하기만 하였고, 그렇게 큰 권력을 가졌어도 자기를 버리고 남의 자유만 무척 존중하였다는 것은 당신의 굳은 신앙에서 우러나온 당신으로서 가장 마땅한 일이라 믿어졌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당신의 무덤 앞에 모여 묘비를 세우고, 또한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당신의 그 숭고한 정신에 비한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마는, 실은 앞으로 자손 만대에 그 정신을 남기고, 그 덕을 사모하여 따르도록 하고자 하는 우리의 미성(微誠)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난날보다 앞으로 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더욱 다사 다난한 날이 올 때마다 우리는 당신의 그 어질고도 착하신 덕망을 아쉬워해야 하고 그만큼 또 슬퍼해야 한다면, 당신은 천국에서 직접 주님에게 도움을 청해 주실 것으로 믿기 때문에 도리어 우리의 마음은 든든하다고 하올까요.


 하지만 이날에 그래도 어딘가 서운하고 슬픈 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연도가 끝이 나면, 당신을 가을 바람 소슬한 이 천보산 마루에 혼자 두고 우리는 모두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게 되면, 당신을 찾을 사람이 몇이나 될 것입니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의 영위에 급급하여 당신을 미처 추모할 여유를 갖지 못하리다.


 이와 같이 가는 자는 가는 것이요, 나머지 사람들은 또한 장차 가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눈에는 인생이 무상하게만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마는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시던 조국을 받드는 데 우리는 함께 심혈을 바칠 것을 다시 맹세하고, 사모님과 아드님을 모시고 우리는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끝으로 오늘 이 조그마한 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여 주신 정계, 경제계, 언론계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는 것을 고하고, 특히 그 주관적 역할을 해주신 양일동 선생과 최동극 씨와 비문을 써 주신 박종화 선생과 이 지방 기관장 및 군민 유지와 무엇보다도 오늘 집전해 주신 노 대주교 각하와 또한 성직자 제위와 대신학교, 계성 여고, 해병대 군악대, 그 밖에 우리 위원회의 많은 인사들과 당신의 묘지를 제공해 주신 혜화동 천주 교회에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것을 고하옵니다.


 망자 장 요한 운석 선생, 주님의 평화 속에서 길이 안녕.

(1966.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