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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제5회 신문 주간 기념 연설 (1961.04.06.)


4‧19는 민주의 가능성



한국 신문인 협회가 제5회 ‘신문의 날’을 맞아 오늘 새로이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다짐하는 이 자리에서, 평소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고 또 국민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의 일단을 피력하게 된 것을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 나라의 흥망 성쇠는 물론, 세계 정세와 역사의 방향까지도 정치가들에게 못지 않게 여러분이 움직이는 ‘매스컴’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는 것은 천하 공지의 사실입니다. 지금 이 자리는 그토록 중대한 사명과 책임을 지닌 여러분이 과거 독재 정권과의 과감한 투쟁을 통하여 나이 어린 이 공화국의 민주주의를 사수하고, 억압된 민권을 펴는 데 절대적 공헌이 있는 우리 나라 언론계 대표들이 4‧19 이후의 새로운 정세 속에서 새로운 수평선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보다 큰 발전을 준비하는 역사적 자리입니다. 

 
따라서 내가 이제부터 말씀드리는 것도 단순히 기념 행사적이거나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오늘의 의도에 못지 않게 진지한 정부의 또 나 자신의 소신과 결의를 천명하는 것임을 먼저 밝혀 두는 바입니다. 

 
4월 혁명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또는 각도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마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적 발전을 더듬는 입장에서 볼 때에는 우리의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민주 공화 정치가 구정권하에서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4‧19 전까지의 12년 동안을 역사에서 도려내는 재간이 없는 한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영원히 남게 될 민족의 오점입니다. 

 
4월 혁명이 위대한 것은 그러한 역사적 오점이 더 오래 계속되지 못하도록 민족의 정기를 발동시켜서 그릇된 방향을 시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매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데 있습니다. 

 
4월 혁명이 위대하면 할수록 4‧19에 선행한 12년 간의 우리 역사가 씻을 수 없는 오점의 역사인 소이(所以)입니다. 

 
이 사실은 또한 과연 우리 민족에게 민주 정치가 가능한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아울러 제기하였습니다. 4월 혁명이 반민주 세력을 쓰러뜨리고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기는 하였으나, 그것만으로써는 민주 정치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혁명은 강한 술과 같다고 합니다. 썩은 권위일망정, 그 권위에 대한 도전이 한번 성공하면 도전한다는 행동 그 자체가 사회적‧도의적 뒷받침을 얻지 못하는 경우에도 하나의 습성이 되어 버려 끝없는 혁명, 혼란, 불안의 악순환을 초래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사태가 4월 혁명 후의 한국에서도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외부 사람들은 물론 우리들 자신 사이에서도 우려된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민주 역량 과시가 민주당 정부 목표


따라서 민주당 정부는 취임 초부터 이 민주 정치 제도의 재확립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민주당의 생리적 욕구이기도 하였으나, 온 민족이, 우리 나라의 역사가 지시하는 명령이기도 하였습니다. 

 
전의 실패를 보충하고도 남을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 땅 위에 꽃피게 하여 우리 스스로도 살길을 마련하는 동시에, 우리 민족의 민주 역량을 새로이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4월 혁명의 영령들에게 보답하고, 나아가서는 자손 만대에 계승될 이 겨레의 올바른 터전을 구축합시다. 

 
이것이 민주당 정부의 최대 목표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의 최대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국민들은 이 목표 달성에 열성적으로 협력하는 현명을 발휘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거듭되는 여러 차례의 선거도 무사히 치르고, 오늘날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은 대개의 기틀을 재수립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민주 정치가 참으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의회 정치의 절차를 따른 정권의 평화적 이양이 전통화될 때입니다. 이 전통의 수립 없이는 나나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외부 사람들은 우리의 주장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당 정부는 이 ‘의회 정치의 절차에 의한 정권의 평화적 이양’에 언제라도 흔연히 응할 용의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권의 이양이라 함은 몇몇 정당 대표들이 모여서 인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유권자들이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책임 있는 야당이 하루빨리 강화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러한 야당이 있어야만 우리가 바라는 전통이 수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자칫 잘못하면 본의 아닌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으므로 여기서 더 부연하지는 않겠습니다마는, 정권의 평화적 이양이 전통화될 때에만 비로소 민주 정치가, 특히 4‧19를 겪은 우리 나라의 민주 정치가 본궤도에 오른다는 우리의 확신과 그 전통 수립에 민주당 정부는 야당에 못지 않게 흔연히 응할 용의가 있다는 것만은 다시금 명백히 하여 두는 바입니다.


난동과 폭력이 위협 요소 


 
그런데 그와 같은 민주 정치 제도의 확립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용서할 수 없는 현상이 지금 우리 나라의 일각에서 조성되고 있는 것을 온 국민은 절대로 간과하여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것은 곧 평화와 질서 속에서 운영되어야 할 의회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난동과 폭력으로 정부를 뒤집어엎고, 소위 혁신 정권을 수립해 보겠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망동입니다. 이들은 과거의 부패 정권에 대한 우리의 정당했던 도전을 왜곡하여, 그 도전이 마치 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 사회주의를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그릇 선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2 공화국에 대한 반역이 구독재 정권에 대한 온 국민의 항거와 동일한 정당성을 가지는 것처럼 일부 청소년들을 현혹, 사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전국민이 피 흘려 싸워서 쟁취한 고귀한 대가를 횡령하려는 가장 파렴치한 술책이 아닐 수 없으며, 제2 공화국과 4‧19 이전을 억지로 동일시해 보려는 의식적 작간(作奸)에 있어서 심히 그 의도가 음흉할 뿐만 아니라, 4월 혁명 그 자체를 모독하고 역사의 발전마저도 조작하려 드는 위계(僞計)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특히 제2 공화국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온갖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 공화국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 공화국 그 자체를 파괴하려는 국내외의 모든 비민주 세력, 다시 말하면 공산당이나 그에 유사한 폭력적, 파괴적 세력의 자유 남용에 대하여 선의의 일반 국민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자유를 허용할 수 없음은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자명한 일일 뿐 아니라, 이미 우리의 법률이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사회주의가 공산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후자가 폭력을 정권 탈취의 수단으로 삼는 데 반해, 전자가 비폭력 의회주의를 통해 정권을 잡을 것을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한에 있어서 사회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와 똑같이 우리 나라에서 법률의 보호를 받으며 정당 활동을 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이익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비폭력 의회주의에 의하지 않고, 지금 우리 나라의 일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책사(策士)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과 같이 폭력 및 난동에 호소하려고 할 때, 그러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나는 묻고 싶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마는, 대한민국은 의회주의에 입각한 민주 공화국입니다. 그 의회주의를 무시하거나 파괴하려는 세력은 누구의 어떤 세력이건 간에 대한민국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실제에 있어서도 지금 현 단계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에게는 정권을 맡길 수 없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난번의 총선거와 그 후의 여러 차례에 걸친 각급 선거를 통하여 국민들이 명백히 그 뜻을 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예로 보아서 앞으로 우리 나라 사회주의 정당들도 참으로 책임 있는 언동을 한다면, 그리하여 국민의 신임만 얻는다면, 정권을 담당하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만 남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다른 모든 합법적 정당들과 같이 난동이나 폭력이 아니라, 의회주의에 입각한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을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엄숙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정치 문제에 관하여 한 말씀 더 드릴 것은 요즘 일부 정치인들 입에 오르내리는 소위 거국 일치 내각에 관해서입니다. 

 
러나 이 문제에 관하여서는 헌법에 명시된 바에 의하여 내각 책임제의 뚜렷한 본질을 살리는 방법, 즉 민의원에서 정부 불신임 결의안을 통과시키거나, 정부가 새로이 민의를 묻기로 결정할 때까지는 계속해서 민주당의 책임 내각으로 나갈 생각이라는 것밖에는 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세간에서는 흔히 민주당 내각이 무력하다느니, 약체 내각이라느니 하고 평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각 약체설에 대해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는 ‘무력하다거나 약하다’는 말의 뜻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또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가를 판단할 도리가 없습니다. 만일 그 말이 소위 국내의 거물급 정치인들을 총망라한 연립 내각 또는 거국 일치 내각이 아니라는 뜻이라면, 그것은 제2 공화국이 내각 책임제를 채택한 이유와 그 역사적 필요성을 망각한 말이고, 현 민주당 내각이 정책의 입안‧실천을 못할 것 같다는 뜻이라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말일 뿐입니다. 그러나 민주당 내각이 독재를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그런 평을 한다면, 표현에 사용된 어휘가 좀 어색하기는 하나, 평 그 자체는 정곡을 맞추었다고 하겠습니다. 

 
민주당 내각은 선의이건 악의이건 일체의 독재를 배격하고 오직 민주주의적 방식에 의해서만 행동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하였고, 또 그 약속을 지금 그대로 실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미 한번 실패한 우리의 민주 정치가 또다시 독재의 제물이 되지 않고, 진정한 의회 정치가 이번 기회에 기어코 이 땅에 뿌리를 박도록 하여야겠다는 정부의 충정의 발로입니다. 흔히 우리 나라와 같은 후진 국가에서는 일정한 한도 내의 독재가 필수 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선의의 독재일 때에는 오히려 환영할 만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계 역사상 독재자치고 자기가 선의의 독재자라고 주장하지 않는 독재자가 언제 있었으며, 그 독재 밑에서 민권이 억압되지 않은 경우가 어느 나라에 있었습니까? 우리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독재가 사실은 뚜렷이 독재를 표방한 독재보다도 음험하고 위험한 점에서 수배(數倍) 더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민주당 내각은 절대로 무력하지 않습니다. 과거 8개월 동안은 집권 전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12년 간에 걸친 국정의 난맥상을 정비하기에 바빠서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한 부문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허세를 피하고 실리를 취하기 위한 신중한 태도였을 뿐, 정부에게 국정 추진의 능력이나 결의가 서지 않은 때문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동안의 노력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반 태세가 거의 완비된 오늘날, 정부는 부과된 사명과 책임을 완수하는 데 있어 소신대로 강력히 매진할 것을 이 기회에 거듭 약속하는 바입니다. 

 
현 정부가 부패하였거나 부패에 대하여 속수 무책인 것같이 비방하는 것도 근거 없는 중상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현 정부는 구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항거하였던 4월 혁명의 계승자입니다. 따라서 현 정부는 비록 다른 특성을 못 가질 망정 반독재 반부패의 기치만은 선명하여야 그 존재 이유가 총족될 수 있는 것이며, 그 존재 이유를 충족시키고 빛내기 위해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을 국민 여러분께 이미 약속한 바 있습니다.


부정‧부패의 제거 


 
우리 나라의 역사를 읽는 모든 학도들이 가슴을 치며 통탄을 마지않을 수 없는 것도 위정자들의 부패상입니다. 특히 이조 시대는 정치가와 부패한 관리들의 독단장(獨壇場)인 양 탐관 오리의 속 검은 장단에 썩고, 곪고, 터지고 한 생생한 역정(歷程)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쌓이고 쌓인 악폐를 이번 기회에 깨끗이 씻어야겠습니다. 다시는 우리의 국사를 읽는 젊은 가슴들에게 못을 박아 주지 않도록 온갖 부패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밖으로는 외국인들에게 한민족의 청렴 결백함을 과시하고, 안으로는 우리 스스로 5천년래 최초의 부패 없는 정부, 부패 없는 국가를 이룩하였다는 자부를 가지도록 하여야겠습니다. 그러나 부패의 방지는 정부만이 혼자서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국민의 협력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감찰 위원회가 새로 구성된 것을 계기로 정부는 가일층 공무원의 부정 적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마는, 오리의 발생을 막는 것은 역시 국민 제위, 특히 언론인 여러분의 협력에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러한 정부의 충정을 양찰하시고 명랑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를 거듭 부탁하여 마지않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민주 정치 제도의 재확립’이 정치 면에 있어서의 민주당 정부의 최대 목표인 것과 같이 경제 면에 있어서의 우리의 최대 목표는 자립 경제의 실현입니다. 물론 많은 애로와 난관을 내포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제를 1년이나 2년 내에 완전히 자립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고, 또 바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그 경제 자립에 선행하여야 할 온갖 비정상적 경제 요인의 정상화를 단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곧 환율‧금리의 현실화, 각종 요율(料率)의 제 사정 등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현실적 고통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감한 수술 없이는 다년 간의 비정(秕政) 속에서 병들 대로 병든 우리의 경제를 소생시킬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정부가 일부 인사들의 반대와 일반 국민들의 의혹을 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감히 그런 수술을 단행한 이유는 오로지 이 민족의 오늘의 약간의 고통보다도 앞날의 번영과 발전을 더 기원했기 때문입니다. 또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그 정권이 참말로 이 민족의 경제적 발전과 행복을 도모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단행해야 할 요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앞날만 내다보고 오늘에의 대비를 잊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 상당한 수가 연중 만성적인 실업 상태에 있고, 또 봄철마다 절량 농가가 속출하는 것이 우리의 연래의 딱한 현실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계획된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국토 개발 사업입니다. 이 계획은 실업자들과 절량 농민들에게 일감과 생활재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별도로 수립되는 경제 개발 계획의 토대가 될 기초 공사를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다행히 이 사업을 위한 국가 예산이 이미 민의원을 통과하여 참의원에 회부되었으므로 그 완전 통과와 더불어 이 강산을 살찌게 하기 위한 사상 초유의 범국민 운동은 머지않아 우렁찬 진척을 보여줄 것으로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언론인의 책무 


 
경제 문제에 관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은 관심과 옳은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은 우방들의 고마운 원조에 대해서입니다. 근간 몰지각한 일부 사람들 사이에 외원(外援)에 공연한 트집을 잡는 경향이 있다고 하나, 이런 언설(言說)같이 현실을 무시하고 인류 상호간의 선의를 불신하는 무책임한 발언은 또 없다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국 원조가 그것을 받는 나라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그 원조가 수원국(受援國)의 정치적 예속을 의미하거나, 경제적으로 영원한 시장화를 꾀할 때에 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자유 세계의 선진 각국들로부터 받는, 또 앞으로 받게 될 원조는 절대로 그런 위험성이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는 단 한푼의 낭비도 없이 오로지 우리의 국민 경제 자립에만 이바지하도록 사용할 것을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특히 미국의 경제 원조는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이후 종래의 연간 계획에서 4, 5년 간에 걸친 장기 계획으로 바뀌고 있으므로, 우리가 그 원조를 선용만 한다면 우리 국민 경제 자립의 날을 많이 단축시켜 줄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조는 결국 우리의 경제에 대한 수혈 역할은 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고 모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모체와 근간은 우리의 힘으로 키워야 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정부는 이 목적을 위해서 전원(電源) 개발, 기간 산업 건설, 중소 기업의 육성, 안정 농가의 창설 등 우리 국민 경제 전반에 걸친 제1차 5개년 경제 자립 계획을 성안하여 이를 과감하게 추진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동시에, 국산품 생산을 장려하고 밀수를 엄금함으로써 국내 산업의 융성을 기하고 있습니다. 

 
이 계획이 다행히 국민 여러분의 호응을 얻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날에는 피폐한 이 강산에 번영의 싹이 트기 시작할 것이고, 다시 그 계획이 2차, 3차 거듭되며는 우리도 남부럽지 않은 높은 생활 수준과 안락한 민생을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왕왕 남북이 통일되기 전에는 남한만의 경제 자립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정부는 그러한 견해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본래 남북이 합쳐서 하나의 경제 단위를 이룩하고 있던 우리 나라인 만큼, 분할된 한쪽만의 경제 자립이 곤란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곤란하다는 것이 곧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 설사 불가능하다고 해도 남북이 서로 갈려서 지금과 같이 적대적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가능한 최고 한도까지의 자립 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자존을 위해서는 물론, 온 겨레의 숙원인 남북 통일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서도 절대 불가결한 것이 우리의 오늘의 처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남북 통일은 이미 유엔에 의하여 무력으로 저지된 공산 통치하의 남북 통일이 아니라 자유로운 민주주의적 통일이며, 그러한 통일의 성취는 구정권이 주장한 것 같은 무력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의 모든 역량을 강화하여 그들을 번영의 경쟁에서도 압도적으로 패배시킴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혁명 후 각계 각층에서 여러 가지 통일 방안이 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의 열렬한 통일 의욕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 정부로서도 경하해 마지않습니다마는, 개중에는 극히 위험하고 또 때로는 무원칙한 통일 방안이 운위(云謂)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계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당연한 요구이며, 우리는 그 실현을 위해 만난을 무릅쓰고 매진하여야겠습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쉬운 말로 우리가 무덤으로 들어가서 이룩되는 통일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로이 살고 우리의 후손들이 또한 자유로이 살 수 있는 통일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초조한 마음을 억제하고, 가장 합리적이며 냉엄한 입장에서 끈기 있게 추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구정권하에서는 통일 문제를 논하는 것조차 일종의 금기인 것처럼 되어 오던 것이 사실이며, 이것은 통일 의욕을 저상(沮喪)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그와 반대로 통일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논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좋은 현상입니다만 통일을 갈망하는 심정이 너무 초조한 나머지 용공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런 생각이야말로 위험 천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각 방면에 걸쳐 국가적 실력을 꾸준히 배양하여 자유가 승리하는 조건하의 통일을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위에서 대강 정부의 2대 기본 목표인 ‘민주 정치 제도의 재확립’과 ‘자립 경제의 실현’ 및 우리 민족의 숙원인 남북 통일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정부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그 계획에 대한 국민의 협력을 얻지 못할 때에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 민주 정치의 상례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비판하고 국민에게 주지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민 여론을 진작하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여러분 언론인들의 책무입니다. 

 
맨 처음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민주 정치 체제에 있어서는 정치가들에 못지 않게 언론인들이 국정 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정부의 결정 내지 의도를 국민에게 반영 전달하는 면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기관도 따를 수 없는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과 같이 민권 수호의 최선봉에 서서 독재와 싸워 이긴 혁혁한 공적을 가진 언론인들을 갖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설사 여러분이 허위를 말하고 정부가 옳은 말을 했다 해도 국민은 정부의 발표보다 신문에 게재된 오보를 더 믿을 만큼 언론인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국민들로부터 그토록 두터운 신뢰를 받는 언론인이 된 것은 오랫동안의 여러분의 빛나는 투쟁의 결과요, 그 투쟁에 대한 당연한 보수입니다마는, 국민들의 그러한 지나칠 정도의 신뢰는 또한 여러분에게 타국에서는 거의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도의 책임을 요구하는 신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4‧19 이후 그러한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지 않았을까요? 

 
제2 공화국의 신헌법이 보정(補整)한 거의 무제한한 언론의 자유를 진정한 자유인답게 책임지고 절도 있게 행사하였을까요? 스스로 새 운명을 개척하려고 가냘픈 두 다리에 힘을 주어 궐기한 국민 대중에게 격려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근거가 박약하거나 하등의 필요도 없는 비관적 견해 내지 전망을 고취하여 그들의 건설에의 의욕을 저상시킨 일은 없을까요? 유감이지만 식자층의 견해로서는 전적으로 그렇지는 못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I‧P‧I 사무국장이 한국의 일부 신문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고 있다고 말했대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점차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고 정부도 그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솔직한 견해를 말씀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먼저 나는 제2 공화국의 현정부가 신문으로부터 과거의 독재 정권에 대한 것과 비슷한 불신 내지 의혹이 언론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민주 정치의 챔피언 


 
우리는 다 같이 반독재 민주 수호의 같은 전열에서 싸운 옛 동지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4월 혁명을 완수하여 참된 민주 국가를 이룩하도록 앞으로도 계속해서 협력해야 할 공동의 사명을 지닌 우리입니다. 

 
우리의 그 공동 사명은 아직 완수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는 전국민의 열성적 협력을 더 얻어야만 비로소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계열의 동지들이 국정 운영의 책임을 맡았다고 하여 그들을 4‧19 전과 똑같은 전제적 집권층으로 취급하고, 심지어는 구자유당 정권의 뒤를 이어 정권의 영속화나 독재화를 꾀하기라도 하듯이 선전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월 혁명은 정권 담당자가 바뀐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권 담당자의 질이, 사명이 국민에 대한 기본 태도가 달라진 데 참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정부와 국민이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 것을 지양하고 양자가 혼연 일체가 되어 당면한 민족의 공동 과업을 완급을 가려서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국가 만년의 대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합심 협력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데 있는 것입니다. 절대 다수의 국민의 소원을 정부가 무시하거나 무시할 수 있던 때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저 멀리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귀점(不歸點) 너머로 국민이 추방해 버린 것입니다. 

 
제2 공화국은 문자 그대로 국민에 의하여, 국민을 위하여 수립된 국민들 자신의 공화국이며, 그 공화국의 국정을 맡은 정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4‧19 이후의 국내의 정치 체제가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지 혹은 볼 수 있는 시력이 없는지, 구태 의연히 덮어놓고 정부 공격만을 능사로 하는 신문이 간혹 있음을 볼 때, 우리는 그러한 신문 자신을 위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19 전 우리 나라에는 소위 야당 신문과 여당 신문이 있어서 그 구별이 뚜렷하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야당 신문이라 함은 정치적으로 엄정 중립을 지키면서도 당시의 정부가 하는 일이 사사 건건 너무나도 비민주적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정부, 대여당 공격을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던 중립지들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의 부정‧불법 행동을 은폐 내지 변명하고, 거짓 통계 숫자를 나열하여 독자들을 기만하던 소위 여당지들이 국민들로부터 반민주주의적이라고 지탄을 받던 반면, 정부‧여당의 온갖 비정‧난정을 과감하게 적발하여 민권 수호와 국가 재산 보호의 최선봉에 서서 싸운 야당지들이 민주 언론의 화신이요, 암야(暗夜)의 등대 같은 존재로 전국민의 신망을 받았던 것은 당연 이상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는 정부를 공격하고 반대하는 것이 그대로 민주주의 수호에 직통하는 참된 언론이었고, 정부나 여당을 두둔하는 것은 곧 악과 부정, 불법을 방임 내지 조장하는 반민주적 사이비 언론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암흑 시대에 있어서의 언론 대 정부 관계를 젊은이들의 피로써 민주주의를 되찾은 제2 공화국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대 착오적 경향이 왕왕 있음을 국민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신문 편집인 여러분! 언론이 정부의 시책 내지 국정 전반에 걸쳐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민주 국가 운영의 기본 요건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어떤 권력도 감히 침해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더 논의할 필요가 없는 명명 백백한 진리요, 상식입니다. 그러나 그 비판을 국민과 정부가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건설적으로 하느냐, 혹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불신과 의혹의 쐐기를 박아 계획된 모든 국가 사업이 실패에 돌아가도록 파괴적으로 하느냐 하는 것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조국을 건설과 번영으로 이끄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혼돈과 불안과 파멸로 이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민주 언론이 택할 길은 과연 그 둘 중의 어느 길이냐 하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지면마다, 기사마다 넘쳐 흐르는 정치 의식의 과잉이라든가, 속단, 부정확한 취재, 근거 없는 억측, 또 편견의 산물인 오보와 거기에서 연유하는 개인의 명예 훼손 혹은 단편적 암흑 면을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국민에게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고취하는 듯한 일방적 편집 태도 등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마는, 이미 그런 것은 여러분 자신이 잘 인식하시어 항상 시정에 애쓰고 계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더 중언 부언하지 않겠습니다. 최근 점점 더 그 경향이 현저해지고 있다는 일부 언론인들의 특권 의식은 진정한 언론인들의 명예와 긍지를 위해서나, 국민과 언론인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 하루속히 시정될 것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이상, 여러 가지 소견과 요망을 부분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모든 것을 종합할 때에는 역시 언론은 민주 정치의 가장 훌륭한 챔피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챔피언이 위축될 때 우리의 민주 정치가 발달할 수 없고, 여러분의 의욕이 충천할 때 제2 공화국이 전진을 멈출 수는 도저히 없을 것입니다. 혁명 후 최초의 신문의 날을 맞아 오늘의 이 뜻있는 모임을 개최한 여러분에게 앞으로 보다 큰 발전과 영광이 있기를 빌어 마지않으며 더욱더 활발한 활약이 있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1961. 04.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