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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현 著 - 운석 장면 일대기

운석 장면 일대기 - 12. 평양교구 확립을 위해 봉사한 5년


 운석 선생을 비롯한 장발, 장정온, 김교임 등의 미국 유학은 미국 메리놀 전교회의 한국 진출과 밀접한 관련하에 뮈텔 주교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의 뮈텔 주교는 미국계 개신교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는 평안도 지방―1923년 당시 총인구는 2,441,400명, 천주교 신자 4,800명, 개신교 신자 41,500명―에 대한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위해 미국 메리놀 외방 전교회의 진출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1923년 5월 운석 선생이 미국 유학 시 도움을 받았던 메리놀 소속의 방(P. J. Byrne) 신부가 교구 설정 준비 책임자로 내한하는 등 본격적인 전교활동에 돌입하였다. 메리놀회의 한국 진출은 운석 선생 일가의 헌신적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


메리놀회의 목

≪메리놀회의 목(睦, John Morris) 신부≫

[제2대 평양 교구장(1930~1936)을 지냄]


 
1924년 10월에는 장정온 앙네나 수녀와 김교임 말가리다 수녀가 미국인 신부 3명과 수녀 4명과 함께 귀국하였고, 운석 선생과 장발 씨도 귀국 후 메리놀회의 전교활동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하였다. 운석 선생은 1925년 7월 12일 나폴리를 떠나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여 홍콩·상해·고베를 경유해 8월 29일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귀국 후 수개월간 휴양하면서 유학생활에 지친 심심을 달랜 선생은 같은 해 12월 24일 메리놀회의 목(睦, John Morris) 신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평남 영유(永柔)에서 평양 교구 설정을 위한 재단 사무를 보는 한편, 영유 성당에 부설된 교육기관에서 한국에 부임한 메리놀회 신부들에게 우리말을 교수하는 어학 교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장발 씨의 부인 서혜련(徐惠蓮)도 미국인 수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등 포교활동을 보좌하였다. 운석 선생은 1927년 평양교구 설정과 함께 교구 본부가 평양으로 이전하자 평양으로 이사하여 1931년 4월 서울 동성 상업학교로 직장을 옮길 때까지 교구 사무와 평양 관후리 성당의 길(吉, Patrick Cleary) 신부를 도우면서 평양 교구의 발전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으며, 1928년에는 평양 천주교 청년회장으로 피임된 바 있었다.  

장 앙네다(정온) 수녀

≪장 앙네다(정온) 수녀≫



길 신부

≪길(吉) 신부≫


서혜련

≪메리놀 수녀회의 전교활동을 도운 서혜련(조바우 쓴 사람)≫



 
다음은 평양교구의 확립을 도운 5년간을 회상하는 운석 선생의 말. “로마를 거쳐 나폴리에서 배를 타고 사십여 일만에 귀국해서는 나의 예비학교 시절의 교장이었던 방(方) 주교가 평양에 계셔서 바로 미국 가톨릭 외방 전교회 평양교구의 일을 맡아 보게 되었든 관계로 그분의 요청에 따라 그 사업을 보좌하여 드렸다. 즉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서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이 평양교구의 사무이었다. 그곳에서 그 일을 돌보기에 꼭 오(五)개년을 지냈다. 그 동안 교구의 모든 일이 사무적으로 체계가 확립되고 나중에는 성모학교 설립과 교구재단(敎區財團)까지 확립되어 자립의 태세가 완비됨을 계기로 그 일을 그만 두고 서울에 돌아와 동성(東星) 상업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평양교구 일을 보던 5년간 선생은 유학 시절에 거둔 교리 탐구의 결실들을 하나씩 세상에 내 놓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먼저 선생은 1926년 이후 미국 유학시절 메리놀회의 월시 총장이 추천해 준 『교보들의 신앙』(Cardinal Gibbons, The Faith of Our Fathers)을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다음은 유학시절 이 책을 접하게 된 사연. “하루는 월시 총장 신부님과 기차여행을 동도(同道)할 기화가 있어 차중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오해를 풀어 주는 데는 어떤 책이 제일 좋으냐고 문의하였더니 그분 말씀이 『교부들의 신앙』이면 그만이니 이것을 정독하여 보라. 또 『퀘스천·박스』도 매우 좋으니 이 두 책만 철저히 공부하면 못 대답할 것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나는 지체 않고 이 두 권을 구득하여 곧 탐독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알고 싶던 모든 의문이 조리 정연하게 해설되어 지금까지의 모든 의문은 깨끗이 무산(霧散)되고 우리 교리를 명확히 자신 있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따르는 희열과 만족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이 밖에도 선생은 1929년 11월에는 『영한교회용어집(英韓敎會用語集, The Summary of Religious Terms)』을 탈고하였고, 1930년 8월에는 『구도자의 길』을 출판하였다.

영유 성당

≪영유 성당≫


1928년 경의 장면 박사

≪메리놀 외방전교회를 돕던 1928년경의 사진≫

[중앙이 방 신부]


서포 메리놀 지부 겸 교구본부

≪서포(西浦) 메리놀 지부 겸 교구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