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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회고록 -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Ⅰ. 서장 - 민주당 창당

 1954년 11월 27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한하여 몇 번이라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 할 수 있다는 조문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찬성 135표, 반대 60표로 일단 부결되었던 것이 29일 개헌안 부결을 번복하고, 세칭 사사 오입 개헌이 공포된 후 한국의 정국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적어도 이때부터 ‘독재 정치’라는 말이 야당 정치가는 물론 일반 국민의 입에서까지 공공연히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이 이상의 혼란과 무법(無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중의 의사 표시인 동시에 독재 정치에 반항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민중이 점점 인식하여 자신과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 개정안의 찬부 투표의 차가 한 표 이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이 대통령의 강압적인 수단이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사사 오입 개헌 파동 직후에 호헌 동지회(護憲同志會)가 국회 내에서 구성됨으로써 민주 국민당에 합세하게 되니 야당 연합의 기운이 비로소 표면화되었다.

민주당 창당 준비 모임. 대성 빌딩 회의장.



 신당을 조직함에 있어서 민주 국민당은 발전적인 해체를 하여 집단적으로 가입하고, 또 호헌 동지회측의 새로운 세력은 개별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민주당이 이룩되었다. 그리하여 민주당은 발기 후 약 10개월 반인 1955년 9월 19일에 창당을 보았다.

 당초에 국회 의석은 비록 적었으나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하에 한국 정계에서 최초로 야당의 대동 단결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1956년 5월 16일 민주당 창당 한 해 뒤 외신 기자들과 함께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민주당이 독재 정치의 배제가 그 가장 큰 사명이라고 공공연하게 성명한 사실이다. 그 정강 제1조에 “일체의 독재 정치를 배격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한다”고 명기하였다. 또한 발족 선언문의 1절엔 “한국의 현실은 실질적으로 점차 전제 또는 관료 독재의 방향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으며, 특히 권력의 과도한 집중과 비민주적 남용에 수반하여 국정의 혼란과 국민의 생활 파탄을 가져왔으며, 국위의 손상이 날로 더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에 대한 책임은 애매 모호하여 민주 발전의 숙원은 한낱 환상에 끝날 우려가 있다…”라고 밝히며, 한국의 정치 현상을 ‘독재’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독재 운운하며 말할 수 있던 것은 당시의 현실로 보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해냈다는 것은 신당(新黨)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어느 정도였던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당 정강


민주당 정책



 9월 19일 신당 발족회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발기인 2천여 명과 방청객으로 초만원을 이루었고, 회장 밖에 모여든 많은 군중들은 확성기에서 흘러 나오는 발기인 대회의 진행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신당 발족에 있어서 최고 위원회의 한 사람이었던 나는 이날 기념 연설에서 “슬프게도 우리는 정부 수립 후 7년을 지낸 오늘 다시 모여 우리의 헌법이 모독당하였다는 사실을 규탄하고 우리의 민주주의적 포부와 이상을 재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한 민국을 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체의 독재를 배격한다고 정강(政綱)의 서두에 내걸었다. 우리들은 진실한 민주주의를 살려 나가기 위해 공정한 선거와 내각 책임제를 주장하는 것이며, 관료 정치에 반대하고 관권의 남용을 경계하는 것이며, 관권에 의한 경제권의 침해와 이에 수반되는 모든 부패를 배격하는 것이다”라고 창당의 뜻을 다시금 천명했다. 반독재를 표방하는 야당으로서의 민주당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촉진제였다. 야당의 결성을 전국민이 원하게 됨에 따라 다수 야당 의원들이 결당(結黨)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나는 민주당 결성이 거의 무르익어 갈 때 가입하게 되었고, 결당과 더불어 신익희(申翼熙), 조병옥(趙炳玉), 곽상훈(郭尙勳), 박순천(朴順天) 제씨와 함께 당 최고 위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는 내 정치 생활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사실로써, 이때부터 나는 진정한 야당 인사가 되어 정부를 견제하고 부정 부패를 저지하는 최일선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듯하였으리오. 야당인으로서 그 숱한 박해와 모함 속에서 하마터면 총격에 생명을 빼앗길 뻔한 액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