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재천

회고 - 외유 내강한 신념의 인간 (조재천) 조재천(曺在千, 전 법무부 장관) 존경과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분 그것은 1950년의 일이다. 6·25 동란으로 전세가 한참 불리하여 정부가 대구에 와 있다가 다시 부산으로 피난해 간 뒤의 일이었다. 당시 대한 민국의 사실상 영토는 경상 남북도의 각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경상 북도 지사로 있었는데 장 박사는 국무 총리로서 초도 순시차 대구에 왔으므로 비로소 뵈옵게 되었다. 장 박사에 대한 첫인상은 말이 적고,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분이라는 것이었다. 첫눈에 신사이면서도 성실한 인간됨을 알 수 있었다. 눈부신 외교 활동을 해 온 분이란 것을 나도 알고 있었고, 신앙에 철저한 분이라는 것도 들어서 짐작은 했으나, 막상 그분을 직접 만나 뵈었을 때 존경심과 친근감을 느꼈던 것이다. 몇 해 후, 내가.. 더보기
장면 박사 서거를 애도함 - 조재천 조재천(曺在千, 전 법무 장관) 1966년 6월 4일 하오 4시 50분 ‘자유 민주의 별’이 또 하나 떨어진 슬픈 시각입니다. 운석 선생의 마지막 숨결을 지켜 본 재천은 옷깃을 여미며 영전에 엎드려 웁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하고, 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지만, 막상 선생께서 운명하시고 보니 진정코 사실로 믿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조금 전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따스한 호흡이 멎어지셨다니 놀랍고 슬픈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선생의 정치적 생애는 형극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시어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으시고,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준행하는 정치적 선각자로서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서서 불의와 독재와 싸우셨습니다. 개인적 폄핍(貶乏)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