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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회고록 -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5. 사회봉사와 언론의 힘


가톨릭교 사회 봉사의 구실


 
그리스도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몇 천 명을 부르시어 귀를 기울이게 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 봉사의 관념도 그리스도에게 그 근원이 있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교적 사회 봉사로써 복된 말씀은 영원한 구속을 위하여 가난한 이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사회악의 주요한 원인은 유물론의 무신론적 철학, 지상 행복의 열렬한 추구, 부와 쾌락의 늘어만 가는 욕망, 권력 증대의 야심에 있는 것이며, 여기에서 자연 우리가 나날이 보는 헤아릴 수 없는 죄악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지 성적인 면의 중대한 악만을 보아도 산아 제한, 낙태, 피임, 이혼, 축첩, 매춘 따위가 있다. 가장 슬퍼해야 할 사실은 많은 비그리스도교국에서 이러한 악들이 완전히 정당한 것처럼 간주되고 법률에 의하여 장려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구제책은 절제, 극기, 인자, 정결이라는 참된 그리스도교 선덕(善德)을 펴는 일 외엔 딴 길이 없다. 가톨릭 입법자, 재판관 및 의사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 직책을 행사할 때에 이 문제에 도전하고 그리스도교 도덕의 원리를 굳게 지켜 나갈 양심의 의무가 있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 세계의 가톨릭 교회보다 뛰어난 조직은 없다. 이것은 어디에서나 사실이지만, 우리 나라의 예를 들어본다면 나는 성 바오로 수도회가 60년 이상 경영한 서울의 성 바오로 고아원-한국에서 가장 오랜 된 곳-의 훌륭한 조직과 부산 메리놀 수도회의 병원-여기서는 가정 진료는 논외하고라도 매일 천 명 이상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을 들 수가 있다.

 
온 국민의 주목을 끌고 있는 다른 훌륭한 봉사는 미국의 전국 가톨릭 복지 협회가 제공한 구제 사업이다. 몇 백만 파운드의 식량과 옷이 전쟁 중 교회의 알선으로 곤궁에 처한 피난민에게 분배되었던 것이다.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 기부자의 영적 동기를 틀림없이 인정했을 것이다.


언론의 힘


 
나치스와 공산주의자가 세계 정복을 위하여 국민을 끌어들이려 할 때에 이용한 언론의 굉장한 활동은 세상 사람이 다 보아온 것이다. 유물론, 전체주의, 공산주의의 거짓 철학, 혹은 그 밖의 모든 가르침의 주창자들은 그 선전을 위하여 출판물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교도는 특히 비그리스도교 지역에 있어서 자주 이 선전의 나쁜 영향을 막는 데 완전히 무력하다.

 
이 슬픈 경향에 대항하기 위하여 출판물을 통한 그리스도교의 강력한 공격은 긴요한 것이다. 가톨릭의 출판인, 편집자, 통신원은 도덕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가톨릭의 원리를 제시하고 그릇된 철학의 가면을 폭로함으로써 크게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출판물 가운데서 일간 신문은 이것을 실현할 수 있다면 다른 출판물에 비해 크게 힘있는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한 예를 들면 서울에는 가톨릭 회사가 경영하는 일간 신문이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신문은 국민의 감정과 정치 및 도덕적 문제에 관하여 그 의견을 충실하고 대담하게 발표함으로써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중의 지지가 몹시 강하기 때문에 이 신문의 발행 부수는 전국에서 둘째이다. 그것은 일반 대중에게 모든 가톨릭적인 것을 제공하고 이것을 옹호 또는 변호하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삼고, 이리하여 교묘하게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편집자 주: 전 ‘경향 신문’).

 
다른 계획은 라디오 선전으로 우리 나라에서 성공하고 있다. 그것은 신교의 방송이다. 매일의 프로그램은 잘 편성되어 있고, 그 속에서 연예 시간 사이에는 성경 시간이 짜여 있어 수만의 청취자가 듣고 있다.

 
비신자를 위한 서적, 소책자, 잡지는 우리 그리스도교적 활동을 위하여 넓은 분야를 제공하고 있다. 인쇄물을 통한 이 주요한 사도직은 깊은 확신을 가진 독실한 신앙을 필요로 한다. 교황의 회칙과 다른 발언도 이리하여 우리 나라 지도자의 주의를 촉구하고 민중의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인생 철학을 설명하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이 건전한 철학이 없이는 그들은 종교를 물리치는 속화주의(俗化主義)와 유물주의와 공산주의의 그릇된 인생 철학에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

 
간행물이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도 넓으나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재능은 이렇게도 드물고 또 발전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는 이에 관한 한없는 요구와 이용할 수 있는 자력과 인물이 모자람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가톨릭 교도가 그 나라의 사회와 전체 생활의 그리스도교화를 위하여 활동할 수 있는 수단은 그 밖에도 많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나 성 복음(聖福音)의 ‘겨자씨’의 활력과 저항력에 대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것은 항상 수와 수단과 이해 관계에, 압도적 세력에 대한 소수자의 싸움이다.

 
극동의 비그리스도교국의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구질서는 급속히 무너져 가고 있다. 이러한 나라에서 지녀온 자연법적 가치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은 무너지고 말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사실 거기에는 무너져 가는 조직을 뒷받침할 깊은 철학이나 종교적 가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개인화하고 자기와 자력에 맡겨지고, ‘20세기의 정신’의 유혹에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고립된 뿌리 없는 존재다.

 
이때에 우리 비그리스도교국은 자본주의라는 서구의 가장 밑에서, 또는 공산주의의 명확한 형태 밑에서 새로운 이교주의자와 유물주의의 정면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 새 이교주의의 공격에 저항할 수 없다. 먼저 그리스도교적 기초를 높여야 한다. 초자연적인 깊은 신앙, 희생적 헌신, 섭리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신뢰만이 협력을 지탱할 수 있다. 신(信), 망(望), 애(愛)의 이 정신이야말로 이러한 비그리스도교 국민의 사회 생활, 정치 생활 또 장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가장 융성한 공헌 또는 가장 연속되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