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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회고록 -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1. 그리스도교의 영향력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비그리스도교국에 있어서 사회와 정치 생활에 대한그리스도교의 공헌


그리스도교의 영향력


 얼핏보면 그리스도교의 나라와 정치의 사회 생활에 대하여 소수의 그리스도교의 공헌이 있을 수 있느냐 하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을 떠난 일이라고 생각될지 모른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그리스도교와 제(諸) 나라에서 감화를 줄 수 있는 범위 사이에는 너무나 명백하고 뚜렷한 불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수에 있어서 미약할 뿐만 아니라 더 큰 불리한 면이 있다. 그것은 교육의 부족이다. 특히 그리스도 사회는 거의 이러한 사명에 대하여 준비가 모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랑은 많은 나라에 있어서 특히 극동의 여러 지역에서 인정할 수 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러한 사태를 본다면, 우리 작은 그리스도교 사회가 이 지역의 사회와 도덕 생활에 대하여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 없는가, 또는 어떻게 하면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하고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관하여 완전히 서로 엇갈릴 수 있는 다른 생각이 내 마음에 떠오른다. 곧 그것은 온 세계에 두루 퍼져 있는 영적, 또는 종교적인 큰 조직체로서 전체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가톨릭 교회가 이들 비그리스도교국의 세론(世論)에서 얻고 있는 커다란 인망(人望)에 관한 것이다. 교회의 말에 대한 이 신망은 세계에 있어서 주는 그 영향과 그의 위신, 그의 국제적인 입장,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강력한 저항에 기인하는 것이다. 국제 도덕에 관한 솔직하고 때로는 과감한 성명은 비그리스도교국에 있어서도 그 큰 영향력을 세론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 위에 특히 비오 11세와 비오 12세 같은 사람들은 제 편이나 적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는 교회가 세계 방방 곡곡에서 조직화되고 있는 감동적인 자선 사업, 또 무서운 박해 밑에서 나타나는 가톨릭 교도의 영웅적인 저항, 또는 순교도 서슴지 않는 신앙과 사랑에 있어서 나타나는 일치의 정신에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교회에 대한 존경이 이렇게도 큰 것은, 그 밖의 몇몇 가톨릭 신도가 실제로 가진 세력과 영향력과는 몹시 균형을 잃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 동포에 대한 가톨릭 신도의 사도적 활동에 있어서 열려 있는 문이 된다. 또 모든 이에 대하여 그 평판에 알맞은 생활을 하고, 그 교회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이 인정하는 표준에 알맞은 행동을 하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랑의 수행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의 지적 및 영적 준비라는 점에서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있어야 할 물질이 너무나도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것은 힘에 겨운 요구와 구실임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비그리스도교국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교 정신, 혹은 그리스도교의 오랜 영향을 받지 못한 나라들, 곧 여전히 이교(異敎)가 우세하였던 나라들을 생각하고 있다. 이곳에는 하느님과 그 계명에 대하여 참된 인식은 거의 없고 자연법과 그리스도교의 도덕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극동에 있는 이러한 나라들은 이미 16세기, 18세기, 혹은 19세기의 이른바 ‘이교’의 나라는 아닌 것이다. 그들은 19세기 및 20세기의 반종교 정신의 영향을 입었고, 그 정신 상태에 있어서도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기구에 있어서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고 또한 지금도 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전통의 종교적, 사회적, 도덕적 오랜 유래는 왕왕 자연법의 거룩한 가치와 진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그 얼마나 비극적인 것이냐? 자라는 세대의 심정과 영혼에 그 텅 빈 곳을 채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반종교주의, 유물주의, 실증주의, 공산주의의 철학도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그 진리와 도덕 가치를 추구할 때, 오직 하나의 의상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유물론과 공산주의의 그릇된 가치가 이러한 나라에서 굉장한 힘을 가지고 침투해 가는 이유의 한 면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의 사회적 및 정치적 생활에 있어서, 또 그 사생활에 있어서도 모습을 숨긴 채 밑바닥을 흘러가는 저 그리스도적 본질(거기에는 우리의 현대의 힘있는 오류에 대한 힘, 혹은 해독제를 끌어내는 그리스도교적 본질)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러한 나라가 실제로는 거의 비그리스도교국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교적 정신과 사상이 속깊이 활발하게 서구의 어떤 나라와는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우리 비그리스도교 여러 나라에서는 젊은 세대가 종교적 또는 도덕적 니힐리즘에 끌려가기 쉽다. 이 위험한 조류를 늦추거나 혹은 막을 이는 거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