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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회고록 -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나의 부통령직 4년 - 5. 민주혁명과 사임의 이유


절망을 뚫고 일어서는 국민


 
국민과 우리 당은 이 절망적인 기분 속에서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을 가졌다. 그것은 정·부통령 선거를 연기하는 정치 아량이 이 정권과 자유당에게 생겨나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야당으로서 새로운 정·부통령 입후보자를 내세울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지탱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온 국민의 대표자들로 조직된 공명 선거 추진 위원회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재자는 언제나 무자비하였다. 추호의 아량도 보여주지 않고 예견한 대로 3월 15일 선거를 강행하였던 것이다.

 
여수에서 민주당 시당부 간부가 살해된 것을 비롯하여 이미 꾸며진 대로 살인과 부정과 4할 사전 투입과 3인조, 5인조의 공개 투표를 자행하였고, 드디어는 너무 많은 표로 계표(計票)되어 자유당 부정 선거 원흉들은 당황한 나머지 중앙 선거 위원회에 감표를 지시하는 웃지 못할 희극까지 연출하게 된 것이 밝혀진 정도였다.

 
그 기간에 민주당이 자유당에 의한 부정 선거 지령의 확증을 얻어, 그 정보를 지상에 보도하였으나 독재 정권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악의 세력이 이어질 수는 없었다.

 
분노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대구 학생 데모, 제1·제2마산 의거, 그리고 4·18의 고대생 3천 명의 데모가 집중적으로 일어나게 되고, 드디어 4월 19일 서울의 전 대학생, 고교생, 시민의 일대 데모로 민권 수호를 위한 항거의 거창한 봉화가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학생들을 선봉으로 한 4·26 민주 혁명은 이루어졌다. 독재에 대한 민주의 승리, 관권에 대한 민권의 승리가 성취된 것이다.

 
지난 4월 6일 민주당원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죽음의 항거 데모를 감행하였던 것인데, 우리의 이 구호가 성공한 날 감격의 눈물이 샘솟았던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며, 이 혁명을 위해 쓰러져 간 수많은 젊은 영령의 명복을 다시 빌어 마지않는다.

 
또한 민주 혁명을 성취하는 데 과감하게 나섰던 전국의 학도들과 교수, 그리고 시민의 앞날에 기어코 영광이 돌아올 것을 축원하면서 이 글을 끝맺으려고 한다.


결언-사임의 이유


 
다만 여기 덧붙여 밝혀 둘 몇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가 어째서 4월 3일에 부통령직을 사임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전에, 즉 4월 6일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내걸고 싸우던 민주당의 함성에 국민이 절대적으로 호응했는데, 이러한 때에 형식적이나마 그 이 정권의 한 공직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구호를 부른다는 것은 자가 당착임을 알고, 내가 그 부통령으로부터 물러나서 자유로이 싸워야 할 것임을 결심하고 있었던 바, 4·19의 비극이 일어나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사임서를 내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 박사의 하야를 촉구하는 의미가 크게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부통령직에 남아 있는 채 이 박사가 하야할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대통령직이 나에게 계승될 것이므로, 이 박사는 나에 대한 증오로 정권을 넘겨 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잔인한 일도 감행할 것이 명백히 예견되었으므로 차라리 그의 하야를 촉구하기 위해 내가 미리 길을 터주는 것이 더 큰 유혈을 피하고 혁명을 이룩하는 첩경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에 있어서 4월 19일, 학생들이 그렇게 피를 흘린 것을 보고 더 참을 수 없기도 했다. 또한 내가 내각 책임제 개헌을 반대하는 것 같은 낭설이 일시 유포된 것 같은데 그것은 전혀 무근한 말이다.

 
그리고 혁신 세력에 속하는 인사들이 반독재 투쟁에 있어서 정면에 나서지는 못하였다 하여도,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갖은 탄압을 받은 것이 사실이므로 내가 그들을 적대시할 이유가 있을 리 만무한데 그런 테마가 일부에서 조작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여기 밝혀 둘 것은 우리 민주당은 결코 봉건 잔재와 특권층에 의해 만들어진 당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현재 민주주의로 완전히 탈피되어 있으며, 오로지 서민의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독재와 투쟁하는 철저한 민주주의 정당으로서 항상 서민의 대열에서 서민의 벗이 될 것은 물론, 우리 당의 앞으로의 모든 정책도 국민 전체의 복지를 구현하는 데 그 기본을 두고 있다는 것도 두말할 것 없다.

 
이런 정치적 이념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혁신 세력 앞에 내세우고 있는 정강과 별로 다른 바 없을 것이며, 다만 그것을 정책에 있어서 실현하는 수단을 우리 당은 보다 현실적인 데 기초를 둔다는 것과 그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우리 민주당은 공산주의나 또는 이와 전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목적과 정책을 가진 조직체와는 지금이나 앞으로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