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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부통령 당선에 감격하여 나의 소신을 피력한다

 이번 5‧15 선거는 우리 나라 역사상 기념될 만한 하나의 진전이다. 우리가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무한한 노력을 경주해 왔으나, 그동안의 형편은 여러 가지 주‧객관적 사정으로 인하여 우리의 민주 건설을 저해해 왔던 것이며, 따라서 대한 민국의 생명이라고 할 민주주의는 한낱 간판에 불과한 처지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 빈사 상태의 민주주의는 이번 5‧15 선거에 있어서 민족의 사활의 기로를 자각한 모든 민중들이 용감히 일어서서 반민주 세력의 침투를 막아 내고 강압과 금권의 홍수를 과감하게 막아 냈을 뿐 아니라, 드디어는 민중의 참된 힘을 과시하게 되었으니 이번 선거의 의의야말로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금반 불초 본인이 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된 것은 결국 전술한 바와 같은 역사적 배경 밑에서 이루어진 것인 만큼, 나의 감회와 설계도 결코 전기한 바 역사적 사실과 유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선거는 관권과 민권의 대립 항쟁에서 민권이 쾌승한 것이다. 범상한 선거에 있어서도 그 당선자는 선거에 발현된 민의의 추세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겠거늘, 하물며 역사상에 기념될 만한 이번의 거창한 민권과 관권의 대결을 통하여 당선된 나의 처지는 이미 분신 쇄골의 정신으로 민의의 철저한 대변을 관철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 나라가 수립된 후, 민주주의는 그 얼마나 험악한 시련의 고비를 겪어 왔던가?

 
후진 국가에 있어서 민주주의가 성장하기란 물론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 나라는 너무도 필설(筆舌)에 벅찬 현실이 거듭되어 왔다. 경찰의 전횡은 민중의 자유 정신을 짓밟았고, 경제적 불안의 연속은 민중을 자포 자기의 타성으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가운데 집권자들은 날이 갈수록 법과 질서를 유린하고, 이리하여 이 나라의 민주 정치는 5‧26 정치 파동을 비롯하여 이른바 사사 오입 개헌 파동 등 치욕적인 사례를 거듭해 왔던 것이다. 이번 선거에 와서는 이러한 폐단이 극도에 달하여 관권은 공공연히 선거에 간섭하고, 선거는 관권의 자의대로 진행되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누구나 이번 선거에서도 항례에 따라 야당은 패배하고 여당이 승리할 줄 알았다. 그러던 것이 일반의 예측을 전복하고 형세를 역전케 한 것은 참으로 우리 국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물리치고 스스로 민주 활로를 택한 때문인 것이다. 민중의 패기가 이처럼 굳세게 나타난다는 것은 3‧1 운동 이래 처음이라 할 것이며, 우리는 이 희귀한 기회를 통하여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를 찬란하게 개화토록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절실히 느낀 서상(敍上)한 바와 같은 제(諸)점을 잊지 않고, 앞으로 4년 동안 나를 선택해 준 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시켜 보려 한다. 우리 나라 헌법에 규정된 부통령이란 지위는 행정부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는 없으므로 국정에 있어서의 나의 지위도 자연 제약을 면치 못할 것이나, 부통령은 참의원 의장으로서 또는 탄핵 재판소 재판장으로서 특수한 임무가 따로 부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참의원의 구성을 조속히 실현시키도록 노력을 경주할 생각이다. 일전에 이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도 나는 참의원의 조속 구성을 요청한 바 있는데, 지난 4년 간을 방치해 온 책임을 이제 새삼 따지고는 싶지 않고, 참의원은 연내에 꼭 구성되도록 관계 당국은 긴급한 조치가 있어야 당연할 것이다. 참의원이 성립되면 입법부의 한 기관인 상원은 좀더 능률적으로 입법 과업을 수행하도록 할 것이며, 정부를 감독, 편달하는 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다음 나의 지론인 내각 책임제에 대하여는 오늘날 너무도 무궤도, 무책임한 행정을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인 바, 지금 민의원은 3분의 2 이상이 자유당이므로 내각 책임제 개헌이 조속히 실현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민주당으로서는 최대의 노력을 다하여 원내 세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적어도 2년 후의 총선거를 통하여는 기필코 다수 의석을 획득하여 우리의 숙망을 달성토록 노력할 방침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에서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故) 해공 선생과 내가 각기 정‧부통령 후보로 공천을 받은 바 있었지만, 불행한 해공 선생은 선거 도중에 작고하셨다. 그 뒤에 일반의 여론은 야당의 부통령만이라도 당선시켜서 정부 내에 민주 거점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이러한 희망에 따라 그 책임이 남달리 무거운 바를 통감한다. 따라서 나는 서정(庶政)의 혁신을 위하여 시시로 대통령께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제언하고자 한다.


 
부통령이 대통령에게 정책 진언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반대당에서 나온 부통령’으로서 나의 제언은 왕왕 자극적인 것이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국민 제위의 끊임없는 편달을 앙망하는 바이며, 그럼으로써 우리의 정치는 진전하고 향상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대통령과의 대립을 일부러 조성하고 정부 내에서 견제 역할에만 치중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누차 언명한 바이지만 나는 이 대통령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대통령에게 가능한 한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정부를 화목하게 이끌고 가기에 힘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방침이 국민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일은 없을 줄 안다. 

 
그 밖에 우리에게는 허다한 문제점이 있다. 여당이 일방적으로 좌우하는 경제권, 특히 금융 기관과 귀속 재산 등의 개방, 법질서의 확립, 또는 기간 산업의 건설 등은 우리가 특히 주력해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 해결에 선행되는 것은 민의를 참되게 반영할 줄 아는 정치 태세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동태를 시정에 반영치 못한다면 민심은 정부에 귀일되지 못할 것이며, 민심이 정부에서 이반된다면 정책의 수행은 마치 돌밭에 씨를 뿌리듯 무용의 도로가 될 것이다. 이 점이 앞으로 가장 중대한 문제이며 내가 고심하고 있는 초점도 바로 그것이다. 지금 나는 부통령이라는 중책에 나감에 앞서서 그 직위의 명(名)과 실(實)이 합일되지 못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라도 나의 전력을 다하여 결코 막연히 그 명(名)에만 안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름지기 교우를 비롯한 동포 제현의 배전의 성원을 간청하는 바이다.  

 끝으로 이번 선거에 있어서 각 지방 교우 여러분의 각각 개인으로서의 열렬하신 기도, 협조, 희생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우리 한국의 주(主)께서도 보호하여 주시도록 계속 기도하여 주심을 간절히 부탁하여 마지 아니한다.


(1956.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