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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 채록 · 회고

강영훈 전 총리 증언 - 3

강영훈 전 총리의 증언 동영상으로, 녹취는 블로그 관리자가 직접하여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괄호 안의 시간은 녹취하지 못한 재상 시간입니다만, 블로그 내 첨부된 동영상은 편집본으로 시간상 차이가 있습니다. (44분 10초 정도 차이가 납니다. 재생시간에서 44분 여를 빼면 됩니다.) 추후 수정의 용이를 위해 그대로 남겨둡니다.





허동현 (이하 허) : 그리고 당시 군대내에서 민주당정권에 대해서 일반적인 장교들이나 이런 분들이 어떤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증언을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영훈 (이하 강) : 4.19학생의거가 일어난 후에 허정임시내각이 3개월동안 있었고 그후에 이제 민주당정권이 들어섰습니다만은,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면서 소위 신파 구파 싸움이 있었고 신파에 이제 장면박사가 내각 총리가 되신, 수반이 되신 정부를 조직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가지고 아주 군대내에 중견장교들 소위 영관급들. 이런 사람들 눈에 이 새로된 내각, 소위 민주당 정치인들이 급속히 부패돼 가는게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와서 인사문제에 관여 자꾸 하고, 물건 보급관계니 뭐니 이런 면에서 쓰는, 자꾸 관여를 해서 솔직하게 우리는 자유당 시절에 하나도 못먹었는데, (45분 30여초) 우리도 좀 먹어야 겠다는 이런 소리를 하면서 다닌다는 말이 귀에 들어올 정도로요.

허 : 개파를 초월해서 다 그랬다는 말씀이시죠? 민주당...

강 :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이게 나라가 이게 되겠느냐. 그런데 이제 학생들이 국회의사당에 뛰어들어가지고 난장판을 부리고, 또 판문점에 가가지고 이북의 학생들하고 담판을 한다고 하고. 질서가 이렇게 되니깐, 도대체 이게 나라의 질서가 근본질서가 허물어지고, 그런가하면은 또 일요일날 같은 때 주일날 군대 간부들이 짚차에 가족들 태우고 어디 가다가 또 붙들려 가지고 말이야. 욕을 보고, 당하고 하는 이런 등등이 대체 이거 이래 가지고 지금 안되겠다.

허: 누구한테 붙들려서 욕을 당한거죠?

강 : 학생들한테. 그 학생들은 또 4.19의거 끝난 후에 말이요. 뭐 그런 안하무인격으로 행동을 한다는 걸 군대에 자꾸 비추게 되었어요. 그런가하면은 4.19 끝나가지고 학원에 들어가서 마침 시험기인데 전부 컨닝만들했다. 이런 이야기들. 그러니까 중견장교들이 이거 학생들이 이렇게 해서 독재에 무슨 부패한 정권을 때려 부순다고 했으면, 자기들이 모범이 되어주어야 되는데, 금새 그렇게 자기들은 가서 말이요. 시험볼 때 컨닝이나 하고 말이야.이래 가지고 되겠냐 말이야. 그런 식으로 젋은 장교들이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런 배경이라고 할까. 그런데서 박정희장군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이거 안되겠다 하는, 소위 우국장교들이겠죠. 이런 사람들이 정치인들한테 나라 맡기면 안되겠다 해서 결국 궐기한 것이 5.16군사쿠테타 군사혁명이라고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허 : 10만 감군설이라든가 이런 문제들이 당시 그... 전군인들에게는 상당히 타격이었던 모양입니다.

강 : 그렇죠. 그게 지금 그런 감군이니 뭐니 이런 것은 북한 사정에 의한, 북한의 군사사정이라든가 안보전체 모든 것을, 이것을 갖다가 생각을 하면서 해가야 될 문젠데, 지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과거에 야당에 있을 때 어느 정도 그런 문제를 검토를 했는지 모르지만. 들어서자마자 10만 감군을 이렇게 얘길했는데. 그것의 취지는 근본적인 무엇은 우리는 설명은 못들었지만. 우리간부들이 생각하기에는 10만을 60만에 10만을 1/6을 갔다가, 감축을 하면을 그 당시에 가령 군사비, 국방예산을 1/6정도는 감축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가지고 이제 산업 경제계획 집어 넣을 수 있다. 그런 간단한, 산술식 이런 것을.. 그런 입장에서 했다고 생각이 되고, 또 하나는 국방문제에 대해서 미군이 있는 동안은 쿠테타도 일어날 수 없고 우리 군자체에서의, 이북의 공산군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이런 근본적인 판단이 민주당정권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등등은 미군이, 그래 내.. 김영선 그때 재무부장관 잘 알고... 그런 그 처지에 있었어요. 처가집하고도 같은 광산 김씨이기도 해서 이제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처지였었는데. 사관학교에 이제 가을에 무슨 특강 같은 걸 이분이 자주 나왔습니다. 한국의 경제문제라든가 이런 그... 또 재무부장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제가 몇번 얘기를 했어요. 지금 중견 장교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까 정부에서 조심해줘야 된다. 그러니까 강장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어. 미군이 있는 동안은 쿠데타는 절대 못일어나. 그게 민주당 정권의 수뇌부의 생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허 : 군대의 속성을 모르고...

강 : 모르고. 그리고 10만을 갔다가 60만에서 10만을 절감을 하게되면은 국방부의 아마 1/6을 갔다가 그걸 딴데 이제 전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등등이 모든 게 평민적인 이런 생각으로 말이야. 평면적인. 이런 산술식 셈으로 이렇게 해서... 그래가지고 그러니깐 군수뇌부야 반대죠 감군, 10만감군한다는거. 군대가 하던 걸 문민정부라 이래 가지고 의논도 없이 말이야 이렇게 해 대니까. 그런 등등이. 그렇게 된데 또 하나는 그 당시에 국방대학원이 생겨가지고, 거기에서 국방정책에 관한 공부를 일년 동안 시켰어요. 거기에서 결국 군사전략만이 아니라 군사전략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이 어떻게 관련되느냐하는 것을 공부하는 게 국방대학이에요. 거기서 그렇게 가만하면서 보니까, 그러면서 또 한측면에는 군대가 처음으로 관리운영계획제도라는 것을 미군에서부터 우리가 수입을 해가지고 우리 스스로가 이제 그걸 해나가니까. 제일 큰 조직체가 그때는 군대였었거든. 그래 가지고 그러한 예산절약이라는 견지에서의 관리운영 제도를 갖다가 미군에서 배워가지고 적용을 하고 국방대학에서는 그러한 군사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의 군사하고의 관련성 등등. 이렇게 하고 보니까 정부를 아주 얕보게 쉽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한다는 생각을 말이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냥 정치권력을 잡았다 이거지 그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냐, 이런 점에는. 군대에서는 전부 상황을 판단하고 거기서 어떤 방침을 결정하고, 방침을 운영하기 위해서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갖다가 실행하고 그것을 다시 점검하고, 다시 또 뭐... 이게 이제 군대에서 쭉 하는 모든 뭐인데. 정부에서 하는거 보면 엉망이거든. 거기에서 급속도로 부패되가고, 이거 안되겠다. 이런 등등이 그런 배경이 군사혁명이 성공한, 혁명을 하여야겠다는 걸 몇 사람이 했는지 모르지만, 군전체가 반대하지 않고 말이야 나중에 동조하게 된 배경이 이제 그렇게 된거...

허 : 인식이 공유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존재했다. 그런 면에서 이한림장군같은 경우에 쿠테타를 진압을 안했던 이유 중에도 그런 인식 같은게 있었겠죠.

강 : 있었겠죠. 있겠죠.

허 : 그리고 마샬 그린 대미대사의 증언에 의하자면 환율하고 군비 압력을 장정권한테 행사했다라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강 : 환율하고?

허 : 예. 군비압력을 장면정권에게 행사해서, 그것이 장면정권의 약화를 초래했다고 지금 후회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군비압력 같은 것에 의해서 10만 감군 같은 것도 얘기가 되고 그랬던...

강 : 그런지도 모르죠. 그러나 군비압력과 10만감군은 반드시 동시에 가는 건 아닙니다. 군비라는 것은 가령 인원을 갖다 줄이면서 정예군대를 만들 수 있거든요. 무기제도 같은 거하고 반드시 인원하고 따라가는 건 아닌데.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제 60만에 10만 감군하면 1/6의 예산 삭감이 된다는 단순 산술식으로 생각들을 많이 한건에요.

허 : 그러니까 군대의 현대화 장비의 현대화같은 강군정책은 없이 단순히 숫자만을 줄임으로써

강 : 그렇죠.

허 : 들어가는 급양비 같은 것들을 줄여서 그걸 다른 재원으로 돌릴 것이다. 하는 그런..

강 : 그게 아마 그것이 소위 배후에 깔렸던 민주당의 국방정책이었다고.

허 : 정책이었다라고...

강 : 국방정책과 국방정책은 주로 미군이 있으면 뭐 걱정 없다는 거고. 다만 이제 4.19후에 민심을 갖다 어떻게 수습하고, 그래도 잘사는 그러한 신정권하 있어서의 우리 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그런 것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게 이제 경제정책을 펴가야 되겠다. 그럴러면... 경제 5개년 계획이니 뭐니 이거 다 민주당 정권 때 만든걸, 쿠테타 일어난 후에 그대로 군부가 지양해서 한거거든. 그러니까 그러한 그 민생문제를 어떻게 하던지, 이것을 발전시켜야 되겠다 하는 것이, 민주당 정권의 기본 그 착상이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허 : 그리고 장도영총장하고 관련해서 말씀 해 주실 수 있으면 해주십시오. 아까 회고하셨던 그 부분...

강 : 글쎄... 장도영장군이 그.. 그러니까 그게 언제 쯤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어느 주일날 용산에 있는 미국 골프코스에 나갔더니, 그때는 많이 용산 골프코스에 우리 국군장성들이 많이 나갈 때에요. 골프개장되어서 얼마 안되어서라고 생각되는데, 그런데 오전중에 제1사령관으로 있던 장도영장군이 예편원서를 냈다. 이사람이 갑자지 예편원서를 냈나... 그랬더니 오후가 되니까 그걸 다시 찾아갔다. 그래 이건 또 어떻게 되서... 무슨 심정에 변화 생겼나, 또 어떤 요인들이 생겼나. 그건 뭐 그때 알 수도 없는거고.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얼마안되서 참모총장 경직이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허 : (57분 8여초) 장총장께서 예편을 기도하신 이유에 대해서 조금 혹시...

강 : 그건 내가 알 수 없구요. 알 수 없고. 다만 그때에 이제 한참 그 쿠테타를 모의 준비하는 그러한 그... 그루프에서 소위 그 자기들 계획을 컴푸라치 하기 위해서의 역정보로, 적총계통이 쿠테타를 지금 할려고 그러고 있다 하는 것을 사방 널리면서 킴에게도 고문단측에 미군측에도 자꾸 돌렸어요. 그래서 그것도 군대를 그만두고 미국에 가서 군단고문단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LA에서 만나서 얘길 들었더니. 그때 지난 합스가 고문단장이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각군단 고문단장들을 소집을 해서 갔더니, 이거 쿠테타 저기.. 적총계통이라고 하는 강영훈, 김흥수, 박병근 이런 사람들이 쿠테타를 한다고 하는데 너희들은 떻게 생각하느냐. 그런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군단고문단장들은 그 사람들이.. 그 자기들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얘길 했노라고 그런 회의가 있었다는 말을 난 미국가서야 군대 그만두고 나서 들었습니다만, 그러나 군사혁명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교묘하게 그런 역정보를 흘린건 사실이고, 하루는 그때 참모총장 채경록장군이 유진상씨 명함을 보여주면서 그 뒷장에 쿠테타 음모 계획이라하는 이런 그 유진상씨 명함 뒷장에 도표가 있는데, 내 이름도 들어가고 내 처남이름도 들어가고 박병근 장군 이름도 들어가 있고 이렇게 이렇게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상불 쿠테타를 정말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걸 윤보선대통령한테 가서 얘기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자기들 모습 커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해서 윤보선대통령 측근에 있던 유진하씨가 그 말을 듣고 장면박사한테 그 명함 뒷장에다 도표를 그려다 장면박사한테 그 명함을 줬어요. 장면박사 그 명함을 채경록 참모총장한테 주면서 이거 이렇게 얘기들이 있다. 그러면서 쿠테타 준비하고 있는 적총계하고 참모총장 채경록장군하고 가까와서, 가깝기 때문에 채경록 장군이 천리장군 이범석 장군한테 가 지시 받아가지고 군대를 통솔하고 있다고 한다,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한 얘기를 어떻게 된거냐 하는 말을장면박사한테 들었다는 거야, 채경록장군이. 그래서 나한테 명함 뒷장을 보여주더라구.

허 : 채경록장군이 총장시절이라면 민주당 정권 초기... 그때 이미 쿠테타가 모의 됐다는 건 사실은 아까 말씀하신 군대의 감군얘기, 전반적인 군대내의 상황 이런거하고 고려해 봤을때, 정권이 보통 생긴 다음에는 몇달간은 뭐 언론하고도 밀월관이 있고, 그리고 대충 그... 어떻게 정책이 펼쳐지고 하는 것도 보지 않고 이제 쿠테타 계획이 입안돼 있었다라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강 : 그래서 그래서 나는 사관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중령, 대령들이 와서 민주당정권 때려 부숴야 된다고 안된다 무능하다 이런 말할때, 난 1년도 안되서... 안된다 된다 그런 말을 할 수 가 있느냐? 우리가 쪼그만 연대장을 해도 적어도 5~6개월이 시간이 필요한데, 한나라를 갔다가 통치 경영하는데 있어서 1년도 안되었는데, 우리가 잘한다 못한다 그렇게 성급하게 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난 나한테 와서 얘기한 중령, 대령들 한테서 얘길하면서...

허 : 그런 영관급 장교들이 (1시간 1분 50여초) 정권 전복을 해야된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한게 언제 부터 였습니까 ?

강 : 글쎄 그게... 그러니까 그게.. 천구백... 오십 구년? 가만 그게 쿠데타 일어난게 1961년이죠?

허 : 예.

강 : 60년. 60년 말. 60년 말이면 그게...

허 : 한 두달..

강 :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았을때.

허 : 얼마 안된... 허정 과도정권이 있었고, (1시간 2분 30여초) 이승만대통령 시절에는 군부에서 쿠테타 얘기가 거의 없었습니까? 들어 내놓고 나온 얘기들이

강 : 쿠테타 얘기는 없었지만은, 쿠테타를 할려고 한다고 해서 김창명이가 군법회의에 몇사람을 회부한 일은 있었어요.

허 : 그 부산정치 파동이 일어나기 전에 그때 박정희 소장이 모시고 있던 분이 이 무슨 장군인가

강 : 이종천 장군.

허 : 이종천 장군 말고. 암튼 쿠테타 계획이 있다고 한번 얘기가 있었거든요.

강 : 그건 모르겠는데 내 기억으로서는 그때의 전쟁때예요. 전쟁땐데.... 53년인가...

허 : 정치파동 나기 전이라고...

강 : 에... 정치파동... 아니 지금 쿠테타에 대한 군대에서의 뭐 있었던 것은, 정치파동이다 뭐다 해가지고 뭐 그때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겠죠. 그때는 내가 아마 미군에 무관으로 52년부터 가 있었기 때문에 모르겠는데, 휴전 전에 내가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인사 국장을 또 하고 있는데. 그때 재판을 하나 하게 되었는데, 그 하나가 뭐인가 하면 내 친구 김종명장군이라고 있는데, 이 사람이 대통령을 뭐하고... 쿠테타를 할려는 그런 것을 그런 모의를 했다 하는 그걸로 군부에 회부가 됐어요. 그래서 그 내용을 쭉 검토를 해보니까 그것은 (1시간 4분 35초여) 그때 군단장이 이형근대장인데, 잘못하면 이형군대장하고 연결시키기 쉬운 그러한 맥락이 있더라구요. 이거 말도 안되는 모의고. 또 하나는 정규문 국제 간첩사건이 있어가지고 정규문이라는 사람이 그.. 프레스... 무슨 어디 기잔 줄 모르겠는데 왔는데 그 분이 국제간첩 모의를 해가지고서 그 조사를 하는데 그것도 뭐 하면은 제2군단장이 전일근장군인데, 그때 군단이 두갠데, 전일근장군하고 연결이 가능할 그런 위험성이 있는 그런 케이스라고.. 이제 김종명 장군은 제1군단장은 이형근장군이고. 이게 우리 국군이 지금 싸우는데 1군, 2군 두개 군단... 두개 군단이지. 1군단, 2군단. 그 군단장을 전부다 이런 쿠테타 음모같은 그런 걸로 연결시키는 그런 것은... 그래서 나는 이거 큰일났다고 생각해서 그때 참모총장이 백선엽 장군인데 이거 가만 보니까 (1시간 5분 50여초) 큰일났다라고 하니까. 야야 절대로 군단장한테 그게 파급되도록 하면 안된다. 모든 걸 (1시간 6분여) 그런 말이 나오게 되면 큰 문젠데. 그런게 있었어요. 말들이... 53년 무렵에...

허 : 53년 무렵에... 그때 제가 어디서 읽은 기억으로는요. 미군측에서 이승만대통령을 상대하기가 힘드니까, 쿠테타를 아마 좀 지원했던 게 있었던...

강: 아, 그거하고 또 연관이 있을지 몰라요. 난 그건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허 : 그 때 박정희장군이 그때 아마 부관급으로 그 밑에서 연관이 있었고, 그것을 그 뒤에 계획을 실천에 나선게 5.16이다 하는 얘기를 갔다가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강: 그때 결국 이승만대통령 지시를 안받았다고 참모총장이 이종찬 장군이.. 대통령한테 말을 듣고 말이요. 그러다가 이분이 미국에 참모대학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에 일선에는 박정희 장군이 이종찬장군 비행기 떠나기 전에 이장군께서 소위 부패한 이 정권을 갖다가 말이야. 뭐 하고 이러한 대사를 갖다가 지도해 줄줄 알았는데 떠난다고, 그런 얘기를 했다는 그런 말이 돌았죠.

허 : 박정희..

강 : 예. 그러니까 박정희장군은 하여간 어떻하던지 정치세력을 잡고서 한바탕 좀....

허 : 해볼 생각이..

강 : 예. 본인이야 잘 고쳐 나갈려고 했는지 몰라도..

허 :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2.26사건이라고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 박정희 장군의 어떤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같은 게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강 : 그건 모르겠어요. 그건 좀 모르겠어요.

허 : 그리고 약간 공통점이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강 : 예. 뭐... 있으면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허 : 그 2.26사건같은 것에 대해서 지금 만군출신이라든가, 그런 일본육사를 졸업했다면 그것을 당시 어느 정도나 당시 일본장교들이 그런걸 갖고 있었을까요?

강: 그러니까 5.16쿠테타를 갖다가 모의 조직한 사람들이 2.16, 5.15사건이란게 있었죠, 일본에 ,,, 5.15, 2.16대해서의 상당히 연구했다는 말들은 있었지요.

허 : 그건 어디서...?

강 : 그건 나중에 나오는 소리에요. 저.. 5.16 군사혁명 후에 나온 말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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