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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창당

운석 장면 일대기 - 21.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1952년 8월 이 대통령은 발췌개헌에 의해 직선으로 치루어진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의도한 대로 다시 당선되었다. 이후 이 대통령은 외생 정당인 자유당을 중심으로 해 독재의 아성을 더욱더 굳건히 쌓아나가기 시작하면서 종신집권의 포석을 놓고 있었다. 1954년 11월 27일에는 “초대 대통령에 한아여 중임(重任)제한을 철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중심제 개헌안이 재석 203명 중 135명만이 찬성하여 개헌선인 3분의 2선에 이르지 못해 부결되자 이틀 뒤인 29일 사사오입(四捨五入)의 논리를 내세워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처럼 이승만 정권의 헌정유린과 폭압통치가 연이어 자행되자 민국당을 비롯한 보수야당 계열은 점차 반독재 투쟁을 위해 힘을 합치기 시작하였다. 1955년 초 민국당과 무소속동지회 소.. 더보기
Ⅰ. 서장 - 민주당 창당 1954년 11월 27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한하여 몇 번이라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 할 수 있다는 조문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찬성 135표, 반대 60표로 일단 부결되었던 것이 29일 개헌안 부결을 번복하고, 세칭 사사 오입 개헌이 공포된 후 한국의 정국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적어도 이때부터 ‘독재 정치’라는 말이 야당 정치가는 물론 일반 국민의 입에서까지 공공연히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이 이상의 혼란과 무법(無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중의 의사 표시인 동시에 독재 정치에 반항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민중이 점점 인식하여 자신과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 개정안의 찬부 투표의 차가 한 표 이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이 대통령의 강압적인 수단이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