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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운석 장면 일대기 - 9. 신앙의 실천 : 성 프란치스코 제3회 입회 운석 선생의 미국 유학은 세족적 지식의 습득을 통한 일신의 영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타는 신앙에 대한 갈구에서 단행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가톨릭 신앙생활, 즉 사도적 생활을 통한 그리스도교의 완덕(完德)을 이룩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베나드 스쿨에 재학 중이던 1921년 8월 28일 운석 선생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성 프란치스코 제3회에 입회했으며, 다음해 9월 24일 세자 요한(St. John Baptist) 성당에서 프란치스코를 수도 명으로 서원(誓願)하였다. 교회의 정의에 따르면, 수도회의 제3회는 “세속생활에 적합한 방법으로 일반 신자들보다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더 추구하기 위하여 서약한 가톨릭 신자들의 단체”로서 회원들은 “재속신분으로 있으면서, 성령으로 .. 더보기
운석 장면 일대기 - 8. 메리놀 외방 전교회와의 만남 운석 선생이 유학을 꿈꾼 이유는 세속적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을 좀 더 연구하고 자신의 수련을 쌓는 한편 일제의 피압박민족인 된 이 나라 국민들에게 참된 교육을 시켜 후일에 천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톨릭을 전교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침내 운석 선생은 1920년 3월 21일 기독교 청년회관 영어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같은 해 미국 유학 길 오른다. 일제는 식민통치 전기간에 걸쳐 한국인이 서구에 유학하여 수준 높은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인이 일본 이외의 다른 선진국으로 유학하는 것을 억제하였다. 특히 선생이 회고하는 바와 같이 그가 유학을 결행한 1920년은 삼일운동 직후였던 관계로 더더욱 미국행이 어려웠다. “평소에 바라고 기다리든 도미는 드디어 1920년에 실현되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