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영선

회고 - 차원 높은 강자 (김영선) 김영선(金永善, 전 재무부 장관) 운석은 강인(强人)이었다 운석 선생에 대하여 할말은 많으나, 여러 인사들이 많은 말씀을 했을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 중복을 피하는 의미에서 간단히 장 박사의 성격의 일면을 밝혀 볼까 한다. 맨 처음으로 장 박사를 뵙게 된 것은 한국 동란의 전운이 감도는 1951년이었다. 대전에서의 일로 기억된다. 출세한 사람을 찾아 다닌다는 것이 어떤 점에선 영광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나 이제나 “세도한 사람 찾아 다니지 않는다”는 한국식 사고 방식이라 할까, 선비도라 할까, 그런 교양을 몸에 지니기에 애를 써 왔던 나로서 그것은 좀 의외의 일이었다. 제2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고 6·25를 만나 정부가 부산에 있던 시절의 일인데, 향리 가까이 대전에 들렀다가 선우종원(鮮于宗源) 씨 소.. 더보기
오직 양심의 자유를 추구 - 김영선 곡(哭) 장면 박사 - 김영선(金永善, 전 재무부 장관) 운석 장면 박사가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그분과 고락을 함께 했던 나의 슬픔은 말할 길이 없다. 그분은 분명히 위대한 인격을 소유자였다. 국내에서 농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에서 철학을 연구한 그분의 가장 큰 염원은 인간의 영혼을 구령하는 데 있었다. 또 하느님이 주신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있었다. 그분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살아오셨으며, 이를 토대로 인간 사회에 민주 질서를 확립하고 민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생애를 바친 분이다. 때문에 그분은 결단성이 없는 유약한 인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분처럼 강한 이가 드물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인간이 갑옷 입고 투구를 써야만 강한 것인가? 너그럽고 부드럽게, 화를 입어도 결코 보복을 않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