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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표욱

운석 장면 일대기 - 17. 사진으로 보는 주미대사 시절 주요 활동상 경제적으로 곤궁한 신생 국가 대사로서의 어려움을 무릅쓰며, 주미대사 시절 운석 선생은 어떠한 활약을 보였을까. 6·25 전쟁 발발 전까지 선생이 개괄하는 자신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대사관 청사 구입 및 증축, 직원 조직, 국무성과의 특별유대 설치, 재화부(在華府, 재원싱턴) 제국 공관과의 친선 강화, 한국의 개별적 승인 획득 운동 추진(30여 개국 승인 획득 ― 재화부 각국 공관을 통하여) 한국 사정 주지(周知)를 위한 선전공작(주로 신문기사 강연 등으로), 한국 군사 및 경제 원조 촉진운동(주로 국무성 및 국방성에 교섭), 재미 한교(韓嶠) 단결 강화 등등에 영일(寧日)이 없이 주야겸행(晝夜兼行)으로 노력. 미 관민간에 대한(對韓) 인식 보급 및 향상이 여력이 보이게끔 되다. 서구의 NATO와 유.. 더보기
운석 장면 일대기 - 16. 초대 주미대사 시절 미국은 조선왕조가 최초로 그 문호를 개방한 서구 국가로서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이래 서구제국 중 한국과 가장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두 개의 상충하는 눈으로 미국을 보고 있다. 하나는 호의적인 시각으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일제를 몰아내고 해방을 가져다 준 세계 최강의 문명국이자 우리의 이해를 대변하는 최대의 “우방”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사발전을 왜고하는 제국주의적 패권국가로 인식하는 것이다. 해방 후 특히 6·25 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전자에 속하는 대미인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운석 선생의 경우 전자에 속하는 시각으로 미국을 보고 미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대한민국이 미국에 파견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