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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현 著 - 운석 장면 일대기

운석 장면 일대기 - 23. 부통령을 사임하다


1. 부통령을 사임하다

 1960년 4월 23일자 『조선일보』 호외는 현 부통령 운석 선생의 사퇴 성명과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의 사퇴 고려와 내각책임제 개헌 고려를 언명하는 성명이 상오 11시 동시에 발표되었음을 알렸다. 이 호외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1956년 9월 28일에 일어났던 운석 선생에 대한 저격사건은 대통령 유고시 승계권을 우려한 자유당 핵심부의 소행이었다. 이를 뒤집어 보면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축출되면 운석 선생은 자동적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왜 선생은 부통령을 사직했을까?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사퇴 하루 전까지 선생은 4․19혁명의 원인이었던 3․15부정선거를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실시하자는 입장이었다.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는 외침은 끊임없었다. 4월 22일 나는 기자 회견을 가지고 비상 사태를 타개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재선거를 주장하였다. 그것은 전국의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원에 따라 선거를 다시 실시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자유당 측에서는 이를 응낙할 리 만무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우리가 내각 책임제를 주장하며, 원내에서의 간접 선거를 실시하자고 하는데 다시 돈 들여 총선거를 할 필요가 어디 있오?’라는 주로 한민계 인사들의 반대 의사도 있었다. 정치적인 복선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끝내 재선거를 주장하는 나의 의사는 관철되지 못하고 말았다.” 1959년 구파의 조병옥과 유진산은 자유당 온건파와 함께 부통령직 폐지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권력 분점을 골자로 하는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비밀리에 만든 바 있었다. 즉 4월 23일자 호외에 보도된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의 “사퇴 고려와 내각책임제 개헌” 발표는 민주당 구파와 연합해 자유당 정권의 유지를 도모하는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었다. 즉, 재선거를 실시할 경우 운석 선생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자, 조병옥 서거후 뚜렷한 대통령 후보를 갖지 못한 구파와 재선거 실시 시 내려질 국민의 심판을 모면하려는 자유당 정권이 야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4월 23일에 단행한 운석 선생의 사퇴 성명, 즉 대통령 승계권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성명을 공표한다. 다음은 선생이 말하는 사퇴이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내가 이 정권에 보복할 뜻이 없으며, 만일에 이 박사가 부통령이라는 존재를 위험시하여 하야하지 않고 발악적인 비극의 사태도 불사할지 모르므로,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하야시키기 위한 촉진제를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나의 최대의 목적은 이 박사의 하야였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희생해도 좋았다”고. 이러한 선생의 마음을 비운 솔선 수범은 정국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즉, 하루 뒤인 24일 이기붕 대통령 당선자가 “사퇴 고려 성명은 혼란 방지 위한 것”이었다는 해명과 함께 “부통령당선을 사퇴할 뿐 아니라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으며, 동일 이승만 대통령도 “자유당 총재와 일체 정당․사회단체에서 손을 떼겠다”고 언명했다. 이어 26일에는 이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고 언명한 다음 3․15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니 재선거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한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를 실시하겠다”는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27일에는 허정 과도정부가 들어섰고, 28일에는 이기붕 일가가 자살하였으며, 29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선생은 말한다. “혹자는 내가 사임하지 않은 것이 옳았다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으나 내 사임이 늦으면 단 며칠이라도 이 박사의 하야가 지체되었을 것은 사실이고 그간에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비극을 미연에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운석 선생의 부통령직 사임과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의 사퇴고려 소식을 알리는 1960년 4월 23일자 『조선일보』호외




1960년 4월 23일 부통령 사퇴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하는 운석 선생

[다음은 운석 선생이 말하는 사퇴 이유. 선생의 사퇴 결심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조속히 이끌어 내어 국민의 희생을 줄이고자하는 동기가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4월 23일 나는 임기 만료 전에 부통령직을 사임하기로 결정하고 기자 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 회견 석상에서 밝힌 부통령직 사임은 여러 가지로 심사 숙고 끝에 내려진 것인데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도의적인 책임감에서였다. 내가 이때 부통령직을 사임하게 된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 첫째, 당시 나의 최대의 목표는 이 대통령의 하야였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 박사의 하야를 촉진시키는 방법의 하나는 내가 부통령직을 사임하는 길이었다. 대통령직 계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항상 대통령 자신과 그 밑의 자유당원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 만큼 이 정권이 풍전 등화에 놓여 있는 계엄령하인 당시, 이 박사가 이를 막기 위해 어떠한 태도를 위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목표는 우선 이 대통령의 하야였다…둘째, 도의적인 면이다. 내가 비록 당이 다른 민주당의 부통령이라고 하지만, 이승만 정권하의 부통령임은 틀림없었다. 이 박사가 비정상적인 사태하에 이 실정의 책임을 지고 부득이 물러날 때에 나는 당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형식적이나마 이 정권하에서 부통령직을 맡았던 나로서는 그 정권이 비상 사태로 물러서는데 나 혼자만 책임을 회피하며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면, 정치 도의상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정상적으로 교체되는 경우라면 문제가 다르다. 셋째, 이 박사가 역경에 빠진 틈을 타서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것 같은 인상을 국민들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의 불행에 편승해서 내가 권력을 잡는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남긴다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