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선생은 8세 되는 해(1906)에 인천 성당 부설 사립 박문학교博文學校)에 입학하였다. 선생은 여기서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4년 과정의 심상과(尋常科)와 2년 과정의 고등과(高等科)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당시 그는 주로 한학과 지리와 산수 같은 신문학도 배웠다. 운석 선생이 회상하는 박문학교 시절을 들어보자. “내가 맨 처음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인천에 있던 사립 박문학교였는데 주로 한문〔千字文, 童蒙先習, 小學, 大學, 中庸, 通鑑〕을 배웠으며 신학문이라고 배웠다는 것은 지금의 지리, 역사, 산술(算術) 정도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관복에 제모를 쓴 순경까지도 상투를 틀고 다니는 때였으므로 우리들은 머리를 땋고 학교에 다녔다.”
≪인천 제물포에 설립된 박문학교에는 수녀들이 교사로 근무하였다≫
2) 수원 농림학교 시절에 발아한 천주교 교리 탐구욕
박문학교를 졸업한 1912년 선생은 인천 공립 심상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고 다음 해 고등과로 진급하여 1학년을 수료한 후 16세 되던 1914년 수원 농림학교(農林學校)에 입학하였다. 원래 선생은 의학강습소에 진학해 의사가 되려 했으나 연령 미달로 원서를 받아주지 않아, 양친과 진로를 상의한 끝에 “학생 전원에게 관비를 지급하였고 학교의 시설도 제일 좋았으며 졸업 후의 취직이라든가 사회진출에도 가장 유리한” 농림학교를 지원했으며, 40명 선발에 1,400명의 지원자가 몰린 극심한 경쟁을 뚫고 최연소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농림학교는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현 농업시험장) 부설학교로 농학박사 출신의 일본인 혼다(本田行介) 권업모범장장이 농림학교장도 겸임하였고, 윤태중(尹泰中, 토양학)·이용묵(李容?, 이학)·임한용(任漢龍, 양잠)·이종오(李鐘旿, 임학)·허흥용(許興龍, 실습지도) 선생을 제외한 교사진은 모두 일본인이었지만 일류학자나 기술자들인 기사들이 겸임하고 있었다.
운석 선생은 젊은 시절을 회상할 때면 “언제나 즐거움 속에 떠오르는 것은 수원 농림학교 재학시절의 삼 년간”이라고 하면서 당시를 “대자연과 벗 삼아 아무 사심 없이 천진한 심경으로 근로에 복무한 가운데 인격의 도야도 저절로 될 뿐 아니라 신체의 건강도 증진되어 나도 모르는 여러 가지 좋은 부수여건의 혜택을 많이 받은 것은 언제나 고맙게 생각되는 바”라고 술회하곤 했다. 농림학교 재학 중 그는 평생의 반려 김옥윤 여사를 만나 백년가약도 맺었으니, 선생의 기억 속에 이 시절은 꿈처럼 달콤한 인생의 황금시기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동급생이었던 한근조 씨의 회고담에 의하면, 농림학교 재학시절 운석 선생은 “마음도 순수하고 외양도 순수”해 “학우들은 물론 선생들까지도 한·일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인물이었으며, 입학 후 반년만에 배일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학내 비밀결사 가입 요청을 “쾌락”한 민족주의자였다. 당시 일제가 실시한 식민교육의 내용은 저급한 ‘실용주의’를 지향한 것으로 기술교육면에 있어서도 한국인을 일제의 노예 혹은 하수인으로 부려먹기 위해 ‘시세와 민도에 알맞은’ 실용주의 교육을 펴는 데 역점을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당시 농림학교 졸업자들에게는 "금테 모자 쓰고, 칼을 차고, 관리 노릇하는" 일제의 하수인 역할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농림학교의 실용교육에 만족치 않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독학으로 영어를 학습한 진취적 기성의 소유자였다. 다음은 한근조 씨의 증언. “기숙사에서 영어만 열심히 공부하고 교실에서도 선생만 나가면 다음 선생이 들어올 때까지 칠판 위에 영어만 낙서하곤 했다. 일본의 식민정책에 따라 죽자하고 영어란 한 자도 가르치지 않는 이 학교에서 영문만 낙서하는 것을 보기에 아이러니하고, 묘한 배일운동으로 느껴지더니 과연 장 박사는 졸업 후 일반 졸업생과 행동을 달리하여 일반적인 직위에 취직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서울 종로 어떤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더 공부하는 한편 용산 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미국으로 떠나가 버렸다.”
≪수원 농림학교 재학시절 학우들과 함께 한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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