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선생은 교육자이자 문화·종교운동가이며, 외교관이자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생동안 꾸준히 집필과 번역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문필가이자 신학 이론가 내지는 교회사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영한교회용어집』(The Summary of Religious Terms. 1929), 『교부들의 신앙』(1944), 『젬마 갈가니』(1953), 『나는 왜 고통을 받아야 하나』(1962), 『성 원선시오』(1964) 등의 역서와 『구도자의 길』(1930), 『조선천주공교회약사』(1931),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1964) 같은 저서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그는 교육자, 외교관, 정치가로서 활약하면서 자신의 견해나 활동 등에 관련된 글들을 신문지상이나 잡지에 끊임없이 게재하였다.
≪『영한교회영어집』, 『교부들의 신앙』, 『젬마 갈가니』, 『나는 왜 고통을 받아야 하나』, 『성 원선시오』, 『구도자의 길』, 『조선천주공교회약사』, 『한 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뿐만 아니라 그는 정지용(鄭芝溶)과 이동구(李東九) 등의 문인과 윤형중(尹亨重) 신부와 같은 개화기 이래 한국 천주교회가 배출했던 지성들과 힘을 합쳐, 근대 한국 교회사뿐만 아니라 문화운동사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갖는 『가톨릭 청년』의 창간을 주도하였다. 그는 1933년 6월 창간 이래 이 월간지에 「성직자와 독신생활」(1933.6), 「구약 성경의 역사적 가치」(1933.7), 「‘면죄부’의 진상」(1934.3), 「조선 가톨릭 신자의 장단점」(1935. 9·10합집), 「가톨릭 액션이란 1~4」(1955.9~1956.1), 「그레건의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회상」(1961.11), 「미사 전례의 사적 소고」(1965.10), 「성 프란치스코 재속 3회」(1965.11) 등과 같은 신학이나 교회사 관계 글 이외에도 「아세아를 위하여 고민하는 대한민국」(1949.10)과 「부통령 당선과 나의 포부」(1956.6) 같은 자신의 정견을 밝힌 글뿐만 아니라 「누이」(1935. 5,6) 같은 소설 등 30여 편의 글을 기고하였다.
『가톨릭 청년』
특히 부모를 잃은 어린 동생들을 위해 온갖 고난을 극복하며 자신을 희생시켜 동생들을 훌륭히 성공시키는 누이의 구도자적 삶을 묘사한 소설 「누이」는 “교도(敎導)적인 작품이면서도 교리(敎理)적으로만 흐르지 않는 뛰어난 문장력과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그 시대의 작품으로는 손색이 없는 단편”이라는 작가 안수길(安壽吉)의 평에서 알 수 있듯이,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운석 선생이 일생 동안 전개한 종교적 저술활동의 근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즉, 선생은 온갖 시련을 인내와 희생과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는 종교적 수련과정을 거쳐 수녀가 된 누이의 입을 빌려 “나의 일신(一身)을 우리 조선 사람 모두를 위해 천주님 앞에 바치겠다”고 해 민족애를 바탕으로 한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운석 선생에게 있어 신앙이란 개인 차원의 영혼 구제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민족을 위한 신앙으로 승화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특히 민족애에 바탕을 둔 왕성한 종교적 저술활동은 다른 정치가들에게 그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그만의 업적이다. 또한 그가 남긴 글들도 대부분 아마추어적인 수준을 넘어선 전문적 저작들이다. 어떠한 학문적, 종교적 수련 과정을 거쳤기에 운석 선생은 평생토록 이토록 많은 저작을 남길 수 있었을까?
≪소설「누이」≫
["스테인드 유리창을 통하여 간신히 비치던 석양의 그림자도 이제 다 없어지고 말았다"로 시작되는 원고지 73장 분량의 이 소설에는 조국애와 민족애에 바탕을 둔 운석 선생의 종교관이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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