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3장에 이런 두려운 말씀이 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 15-16).
즉 너의 행실이 아주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내 비위에 거슬려 구역이 나서 그만 뱉어 버려야겠다는 말씀이다. 열심 없는 미지근한 자는 하느님께서 참다 못해 끊어 버리신다는 두려운 경고의 말씀이다. 최근 현 교황께서도 이런 미지근한 신자들이 많음을 개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약하고 쉽게 죄에 떨어지며, 그때그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윤리 생활을 하고 있는가? 특히 교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교회와 사회를 위해 역군이 되어야 할 자들이 신앙에 냉담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까지 있는 데는 내 마음이 심히 아프다.”
과연 우리 교우 가운데는 영세 허원(領洗許願)으로 세속과 마귀를 끊어 버리고 하느님께만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엄숙한 맹서를 바치고 나서도 처음에는 한동안 열심하다가 차차 육욕, 재물욕, 명예욕, 권력욕에 사로잡혀 어느덧 열심은 식어 버리고 기도와 극기와 자제에 염증이 나게 되어 형식적으로는 교우이면서도 내부는 점점 태만하여져 소죄쯤은 예사요, 나중에는 대죄까지도 서슴지 않고 범하게 되어 하느님께 대한 무엄한 배신 배은 생활을 계속하는 이가 적지도 않은 것 같다.
이런 이들은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도 받았으려니와 점차 타락의 심연으로 빠져 갈수록 하느님의 버리심을 받아 나중에는 양심조차 마비되어 거의 아무런 감각도 없이 지옥의 길로 곧장 달리는 것이다. 이런 이들을 가리켜 바오로 사도는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로마 1, 28)라고 갈파하셨다.
자고로 큰 죄인이 회개하여 성인이 된 예는 있지만, 미지근한 이가 도로 열심을 회복하여 성인이 되었다는 예는 극히 드물다. 사람이 하느님께 미지근하게 대하면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연히 받으셔야 할 최고 숭경을 맞갖게 바치지 않는, 즉 하느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고, 따라서 하느님께서도 이런 모독 행위의 불효자에게는 자비의 은총을 거절하신다. 이런 이는 자신이 죄중에 있어 치명상을 받을 뿐 아니라, 그 못된 표양으로 남에게까지 해를 끼치는 양면도(兩面刀)의 구실을 하여 나중에 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생을 두고 여러 본당을 두루 다니며 피정 기도를 지도해 온 저 유명한 빈첸시오 회원 렘더 신부의 경험 수기 중의 아래 몇 마디는 생각 있는 이들에게 자기 반성에 심각한 힌트를 준 것이라고 믿는다.
“…그대는 겉으로는 신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으나 엄청나게 죄를 많이 짓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는지도 모른다. 미사 참례도 가끔 궐하고 성사도 잘 안 받고, 거짓말, 저주, 악담을 마구 하고, 증오, 보복, 탐심, 방탕, 음행을 곧잘 범하고 있지나 않는가? 남 보기에는 제법 어엿한 교우이지만, 속속들이 뚫어 보시는 하느님 눈앞에서는 숨은 죄악으로 가득 찬 한 개의 회칠한 무덤일 것이다. …이런 이들은 혹 고해 성사를 받기는 한다 해도 마음은 고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받기 때문에 실상은 성사를 모령(冒領)하는 대죄(大罪) 중에 있다. …또 매달 혹은 매주일 성사를 또박또박 받으면서도 자기의 신성한 결혼 처지를 거슬러 부정한 죄를 짓거나, 요사이 유행하는 소위 신판 도덕 표준을 따라감인지 장차 태어날 자기 육신의 생명을 죽이는(인공 낙태 등) 흉악한 큰 죄를 범하는 자가 많다. 남 보기에는 점잖고 신덕 있는 사람 같고 성당의 일이라면 열심히 보아 주어 교회의 중진으로까지 인정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속을 들여다보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하늘을 향하여 복수를 부르짖는 비밀 대죄와 모령 성사의 독성죄 중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대는 혹 ‘나는 그런 대죄인 부류에는 속하지 않으니 만큼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자위할는지도 모르지만, 그대야말로 완전한 회개가 없다면 대죄 중에 있는 이보다 열심 없고 미지근한 상태에 있음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직언하였다.
영국의 매닝 추기경의 아래 말씀도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명언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이 흔히 불법만 아니라면, 최대한의 욕심을 만족시키려고 그 한계선 언저리까지 가서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다가 필경은 금단의 선을 넘어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천국문은 매우 좁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루가 13, 24).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마태 7, 13-14) 하셨다.
이 세상은 영과 육의 끊임없는 전장이다. 육은 언제나 영에 반항하고, 마귀는 갖은 유혹과 함정으로 육과 결탁하여 영을 잡치려 든다. 이 전장에서 여간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끝까지 혈전을 벌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싸움에 지치고 실망하여 도중에서 후퇴하면 항복만이 남아 있다.
언제나 오관을 억제하고 극기 보속과 겸손 기도로 계속 전진하지 않고, 자신을 철저히 일신하지도 지배하지도 못하면서 구령을 바란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미지근한 사람에게는 이런 용단과 투쟁력이 전혀 있을 수 없다. 그저 막연히 나도 교우입네 하고, 아무 노력도 없이 흐리멍텅하고 미지근하게 어름어름 적당주의로 그날그날을 지내다가는, 뜻밖에 육신 생명이 끝날 때 구령은 고사하고 무서운 심판이 벽력같이 내릴까 두렵기만 하다. 우리 인간은 워낙 나약하고 무기력하지마는, 자신의 부족을 주님의 도우심에 의탁하고 대오 일번(大悟一番) 필승의 결심으로 자기 혁신과 삼구(三仇) 전장에 나서 끝까지 싸우기로 최선을 다한다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돌보아 주사 싸우는 데 필요한 모든 지모(智謀)와 힘을 주실 것이며, 끝날 때는 승리의 월계관까지 씌워 주실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자신 있는 다음 말씀을 기억하자.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필립 4, 13).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디모 4,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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