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용서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사소한 비난, 중상, 모욕이라도 이를 당하면 마음이 아프고, 이를 잊고 그대로 용서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인간 본성이 이를 용납치 않기 때문이다. 용서는 고사하고 기어이 이를 보복하려 드는 것이 우리 인간 속세의 통례로 되어 있다. 이를 않고 참는 사람은 어딘가 모자라는 못난이로 밖에 보아 주지 않는다. 이런 보복 심정과 행위가 얽히고 설키어 원망, 증오, 모함, 투쟁, 살상의 비극까지가 벌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로부터 인간 사회의 슬픈 모습이다. 이런 추악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혁신시키지 않고는 결국 비극의 반복과 멸망밖에 남을 것이 없다.
세상의 죄를 제거하러 오신 예수께서는 이 문제의 근본 해결책으로 사랑에 터전을 둔 용서의 계명을 준열하게 내리셨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 44).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즉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 된 보람이 어디 있느냐 하시는 말씀이다. 마태오 복음 18장에 주인에게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가 제게 단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멱살을 잡고 용서 없이 옥에 가두어 빚을 다 받아 냄으로 주인의 분노를 사게 되어, 도리어 제 자신이 감옥 신세를 지면서 탕감받은 빚을 도로 다 물게 되었다는 비유 말씀 끝에,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라고 경고하셨다.
또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한다”(마태 5, 22) 하셨고, 제대 앞에서 예물을 드리기보다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부터 하고 오라고 엄명하셨다. 즉 용서 않는 자는 “감옥에 가둘 것”이라고 규정하였으니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이냐. 남을 용서 않고도 구령하는 길이란 절대로 없다는 것을 똑똑히 깨우쳐 주신 것이다. 우리가 매일 외우는 주님의 기도에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하여, 내가 먼저 남을 용서한다고 하는 것이 선행 조건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으로만 아니라, 십자가 상에 매달리셔서 극심한 고통 중에 나를 죽이는 악당들에 대한 첫마디 말씀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는 열렬한 기도였다. 이 얼마나 하느님다우신 위대한 관용의 표양이신가? 이러한 놀라운 사랑의 표양을 보면서도 우리가 어찌 감히 남에게 받은 사소한 비방, 냉대, 모욕을 참지 못하고 용서는커녕 보복까지 하려 들겠는가?
남을 용서하기란 어렵기도 하지만 우리 주 예수와 여러 성인들의 위대한 산 표양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가? 우리도 겸손되이 기도하고 힘쓰면 틀림없이 참고 용서할 힘을 주신다. 참고 용서하는 자는 못난이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위대한 제자들이다.
(196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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