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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 채록 · 회고

강영훈 전 총리 증언 - 1



강영훈 전 총리의 증언 동영상으로, 녹취는 블로그 관리자가 직접하여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괄호 안의 시간은 녹취하지 못한 재생시간입니다만, 블로그 내첨부된 동영상은 편집본으로 시간상 차이가 있습니다. (10초 정도 차이가 납니다) 추후 수정의 용이를 위해 그대로 남겨둡니다. 




 

허동현 (이하 허) : 장면총리를 처음 만나시게 된 게 미국에서 만나시게 된거죠?

강영훈 (이하 강) : 그렇습니다.

허 : 그 때의 그 장총리를 만났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얘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강 : 장총리님을 처음 만난 것은 물론 뉴욕인데 1950년 입니다. 1950년 10월달에 내가 뉴욕엘 갔어요. 뉴욕에 뉴욕 해럴드 트리비언이라는 신문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연례 무슨 고등학생들 포럼이 있었는데, 그 해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니까 공산세력의 이러한 침범에 대해서 한반도. 민주진영이 힘을 모아서 여기 대향해야 한다는 그러한 취지로서의 어른들의(? 1분여) 포럼이 뉴욕 해럴드 트리비언 스폰서로 뉴욕에서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한국 군인하고 미국 군인 한 사람씩을 초청하자 하는게 그 포럼의 주최자들의 생각이어 가지고 갑자기 나 보고 이승만 대통령이 너하구 신승우 장관하고 갔다 오라고 해서, 사실 2주일 예정으로 거기 갔는데, 돌아올라구 그러니깐 거기 그대로 남아서, 뉴욕의 미국 육군 통신관계의 훈련영화 제작소란게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국 군대를 훈련하는 훈련영화를 찍으려고 하니깐 그것을 도와라. 소위 한국말로 군사용어같은 것을 아는 사람이 거기 없으니까 그걸 도우라는, 감독하라는 사명을 가지고 거기 계속 있었어요. 한 6개월 있었어요. 그 6개월 동안 장면 - 그 때는 주미대사로 계실 때에 처음 만난겁니다. 이제 UN 국영도로의 날 (? 2분 20여초) 하기 위해서 장면 총리께서 코모도 호텔이라는 데 투숙하고 있었는데... 

                          …

허 : 장총리 미국에서 만나셔서 군사영화관계로 미국에서 활동하실 때 장총리 만나셨을 때 인상에 말씀해 주십시오.

강 : 제가 장면총리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1950년 뉴욕에서 장총리께서 그 때 주미대사로 계시면서 유엔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뉴욕에 와 계실 때 입니다. 그 때 나는 어떤 군사임무를 가지고서 뉴욕에 한 반년, 10월달에 가 가지고 50년 10월달에 가서 그 다음 해 4월까지 6개월 한 동안 있는 동안에 가끔 장총리님을 뵙게 되었는데, 우선 제 첫인상은 대단히 이렇게 인상이 온화하시고 참 선생님같은 그러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던지 장면박사를 만나면은 다 아주 참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던 그 시대라고 생각합니다만은, 일례를 들면 내가 그 후에 무관으로 갔을 때에 52년입니다만은, 장총리님을 자동차로 모시던 운전기사가 인도 출신 운전기사가 있었는데, 나한테 가끔 장총리님 안부를 물어요. 그래 어떻게 장총리님의 그러한 얘기를 가끔 하느냐 하니까 ‘저는 장총리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면서 얘기가 ‘그 분은 나를 일개의 운전사로 대하는 게 아니고 친구로서 저를 대해주었습니다.’ 그런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양유찬 대사는 어떠냐 그러니깐 ‘그 분은 저를 일개 고용인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시간외 근무를 하면 돈 두 더 주고 해서 고맙지만은 장면박사는 제가 근무외에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돈을 더 준 분이 아니지만은 그 분은 저를 친구로 대해주니까 그런 분이 어딨습니까. 그래서 저는 양유찬 대사에 대해서는 물론 고맙지만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것 보다는 그저 고마운 마음인데, 장면박사에 대해서는 정말 존경합니다.‘ 그런 분이었습니다. 장면박사는. 그래 가끔 제가 뉴욕에 한 반년 있는 동안에 워싱턴으로 대사관으로 오라고 해서 내려가면은 ’펜타곤에 우리 국군에 장비를 더 달래는 교섭을 해야 될텐데 여기에 무관부가 아직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네가 무관대리를 해 가지고 날 좀 따라오게.‘ 해서 제가 몇 번 모시고 펜타곤에 가서, 그 때 연합참모회의장 브레드리히장군과 마샬국방장관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근데 역시 브레드리히장군이나 마샬장군 가서 뵐 때마다 참 이분들이 장면대사님을 아주 정중하게 영접해 주신 그 모습을 보면서 과연 참 훌륭한 분이다. 우리 장면박사께서 참 훌륭한 분이다, 대사다 하는 것을 그 때 느꼈습니다. 유엔에서도 각국 대표들이 그 때 우리는 물론 회원국가도 아닌데, 각국 대표들이 장면대사에 대해서는 각별한 존경을 하고 있다는 그러한 느낌을 가졌던 것입니다.

허 : 부통령으로 제직하고 계실 때요. 그 때도 가끔 찾아뵙고 순화동 공간에서 말씀을 나눈 적이 있으신 것로 회고가 되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십시요.

강 : 이분이 부통령이 되시니깐 야당에서 대통령이 되시니까, 딴데는 모르겠습니다만은 8군에서 가끔 무슨 리셉션이 있습니다. 연회가 있으면은 거기에 오시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그러면은 그때 인사를 드리고 했는데, 우리 고급장교들이 다 물론 부통령이시니까 다 인사를 하지만은 그렇게 오래 앉아 있어서, 또 가깝지도 않고 하니까 말상대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사실 우리 군인 장성들 중에 개인적으로 장면박사를 아는 분은 이영근 대장하고 저하고 두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영근대장께서는 물론 일선에도 있고 거기에 참석하지 않은 일 많았습니다만, 제가 서울에 근무하는 일이 많아서 가면은 이제 여러가지 이야기도 물으시고 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는 가끔 순화동에서 저를 전화로 사람을 보내서 좀 와서 군대사정도 좀 얘기를 하라고 그러면서 절보고 제 자동차를 타고 오지말고 차를 보내니까 그 차를 타고 오라고...

허 : 그건 아마 신분노출..

강 : 뭐 그랬겠죠. 그래서 제가 가서 대체로 군대의 지금 여러가지 안보관계가 어떻게 되간다는 거 그런 것을 말씀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허 : 이영근대장 말고는 이한림장군하고 장총리 관계는 어떠셨습니까?

강 : 총리가 된 후에 잘 알게 되지 않았는가...

허 : 그건 노주교님을 통해서 카톨릭 신자이기때문에..

강 : 뭐 그런 점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었던 분이 김....

허 : 김철규 신부님.

강 : 김철규 신부님이 이한림장군하고 장총리님하고의 중간역할을 많이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허 : 이한림 장군은 만주군 출신이시죠?

강 : 그렇죠. 만주군관학교에 박정희 장군하고 같이 동기생으로 들어갔다가 본과는 일본육군사관학교로 유학을 하고 졸업한 후에 만군에서 아마 봉사하던 그런...

허 : 간동에 있던 조선인 특설대에 들어가셨죠?

강 : 그거 하고는 좀 다르죠.

허 : 그 차이는 뭐가...?

강 : 가령 간동 간동성에 있던 한인 특설부대, 거기에 있던 분으로서 명성이 있었던 분, 김백일장군 같은 분이라고 기억이 되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만은 그러나 정규 만주 군관학교에 들어가서 거기서 예과를 졸업하고 본과는 일본육군사관학교에서 나온 것이 이한림장군이나 박정희 장군.

허 : 두 분이 다 육사를 같이 가신거군요?

강 : 다 같이..

허 : 두 분 사이가 굉장히 좋으셨을 것...

강 : 물론 그렇지요. 동기생이니까.

허 : 쿠테타 당시에도 두 분은 그런면에서는 서로 어떤 관계가 상당히 사적으로 얘기를 할수 있을 정도 수준이 됐겠죠. 그러니까...

강 : 글쎄... 그것은...

허 : 이한림 장군한테 쿠테타 계획에 대해서 애기를 했다든가 하는 것은 없었을까 하는...

강 : 저는 전혀 그런 소리 못들었습니다.

허 : 다음에 그..

강 : 그러나 이제 쿠테타가 일어났다고 했을때에 난 그날 아침에 이제 사관학교에 가서 참모총장한테 전화를 거는데 통하질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나는 사실을 쿠테타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반대하는 입장은 우선 우리가 공산독재하고 싸우는 마당에서 무슨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군대가 정치에 들어간대는 것은 우리자체의 약점을 만들기 쉬운 것이고 또 군인독재하고 공산독재하고를 갖다 비교한다며은 공산독재가 월등 조직적인 면이라든가 여러가지 면에서 강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은 라틴아메리카의 쿠테타 반목같은 이런 것이 있어가지고 더욱더 자유민주주의를 맹글겠다는 그 기반을 갖다가 약화시키는 그런 거이 된다고 생각을 해서 처음부터 나는 군사 쿠테타라든가 군사혁명은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육군사관학교학생들 지지대모 해달라는 소리, 시가행진을 해달라는 걸 거절하는 그런 입장에 있언 것입니다.

허 : 그것과 관련해서 한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것은, 쿠테타가 난 날 육사로 가시다가 의정부쪽으로 해서 라이언장군을 만나셨었지 않았습니까. 그쪽에서 박정희 장군에 대해서 물어봤을때...

강 : 그래 그.. 사관학교로 나갈라구 이제, 서대문에 집이 있는데 거기에서 자동차를 타고 광화문쪽으로 가니깐 벌써 거기에 혁명부대들이 쭉 서가지고 공포탄을 쏘고 있었어요. 교통이 두절되고 그런 상태에서 내가 육군단장을 과거에 했기 때문에 의정부쪽으로 이렇게 해서 사관학교로 나가는 길을 알기 때문에, 이제 그래 글루 돌아서 나가기를 결심을 하고 의정부에 도착했을때, 가만 생각해보니깐 미 1군단에서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지 않겠느냐. 사관학교로 향해 가기 전에 거기에서도 이제 장도영 참모총장한테 전활 몇번 걸었지만, 집에 거니까 어제 저녁부터 나가서 없다고 전 사포관(? 15분 10여초)이 그런 얘기를 했고... 육군본부에 거니까 물론 통하지 않았고 해서 이렇게 나가던 도중인데 그래서 이제 지나가다가 군단장이 라이언 장군인데, 내 육군단장 할 때부터 잘 알기 때문에 우선 불문곡직하고 들어갔서요. 라이언장군 숙소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깐 이 사람이 문을 열어주는데 보니까 벌써... 어... 뭐이드라...

허 : 완전군장을 꾸리고 계신 걸로...

강 : 그렇하구선 날 만나자마자 "Time is bad" 그러더라 말이요.

허 : 군단장이 권총을 차고 있는 경우에는 비상사태시에만 그러고 계신거죠?

강 : 그렇죠. Time is bad. 그래서 그때는 그 소리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까 왜 Time is bed라고 했나, 그러면은 쿠테타 자체는 괜찮은데 그 발기한 시간이 나쁘대는 말이냐 그건 나중에 내가 생각하게 된겁니다만은,그런데 그 얘기를 나중에 생각을 하니까 장면정권에 대해서 이 장면정권이 너무 질서를 잡지 못하고 사회가 아주 무질서한 상태로 이렇게 들어간, 학생들이 4.19후에 가두해서 맘대로 하고, 판문점엘 간다, 국회의사당에 들어간다, 뭐 이런 등등 여기에 대해서의 적절한 조치도 못하고 이러니 이 정권이 어떻게 되겠냐하는 우려를 미국 국방성측에서는 하고 있었고, 그러나 미국 국무성측에서는 국무부측에서는 역시 장면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이 민주당정권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지금 잘하고 있다 이런 미국정부내의 부서간에 있어서의 의견이 같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가. 그래서 이제 그러니까 ‘Time is bad’ 한데 대해서의 장면정권은 이건 약체정권이 되어서 안되겠다는 이러한 것이 미국 군인들 간에 공통된 어떤 뭐 있지 않았는가.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Time is bad’ 한 것이 그런 의미가 있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됐습니다만은, 그렇다고 그 문제를 가지고 라이언 장군하고 딴 사람하고 그때 왜 당신 ‘Time is bad‘라는 말의 이면에 있는 것이 무어냐 물어보질 못했어요.

허 : 미장성들은 쿠테타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고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라고 해석해도...

강 : 글쎄요. 그건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확실히 없더라도 현 장면 정권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허 : 마샬 그린 당시 미국대사대위 ,이분의 증언에 의하자면 5.16 쿠테타를 미 장성들만은 지지했었다. 국무부나 국방부의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미 장성들은 지지하고 있었다라는..

강 : 글쎄 난 그건 뭐 확실히 나로서는 말할.... ‘Time is bad’라는 그 말 자체에 뉘앙스가 있는 말이에요...

허 : 그러니까 그 뉘앙스가....

강 : 그건 나중에 생각한 말이예요. 그 당시에는 뭐... 그래서 나는 도대체 지금 장도영 참모총장한테 전화를 걸래도 통하지 않고 도무지 뭐 알수가 없는데. 어떻게 되가는지 넌 어느정도 정보를 알고 있느냐 당신은. 그랬더니 자기가 알기에는 1700명정도가 가담을 해 있고 거기에 공수부댄가 뭐 일개대대하고..

허 : 해병대.

강 : 해병대 일개대대하고, 그리고 육군단의 포병부대가 참여하고 있다. 그것도 나중에 포병대가 참가하고 있다고 해서 난 또 대포 끌고 나간 줄 알았다고, 그래서 그게 내가 이제 또 잘못 판단을 한게 모르겠읍니다만은, 그러면서 1700명 정도가 지금 가담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박정희란 사람이 사상이 이상하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렇게 나한테 묻더라구요. 그래서 그 뭐 물론 그 설명할려면 박정희 장군에 대해서 설명 할려면 과거부터 쭉 이제 여러가지 김창영 사건 때부터 관련해가지고 여수순천사건, 전에 여러가지 관계된 것이 (20분 10여초) 말이 긴데 그걸 뭐 얘기할 시간도 없고 해서 나는 그 박정희 던지 누구던지 한국전쟁을 싸운 사람들이라면은 일단 믿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만 대답을 했어요

허 : 그 말씀하셨다는 건 그때 당시에 쿠테타에 대해서 어떻게..

강 : 그러니깐 사상이 이상하고 박정희가 지금 전부 지휘를 하고 있다는데 박정희가 사상이 이상하다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렇게 나한테 묻더라구요.

: 그러니까 그거에 대해서 박정희는 지금 신뢰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강 : 신뢰라는 말은 안 했죠. 다만 한국전쟁을 싸운 장성들이라면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겠다 했죠.

허 :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좌파 성향은 아닌 인물이라는 걸 말씀하신 거지, 쿠테타를 박정희가 한 걸 지지하신다는 뜻의 발언을 하신건 아니죠?

강 : 아니죠. 그건 아니죠.

허 : 전에 회고하신데 보면은 그런 식으로 오해의 소지가 좀 있을 것 같아서 지금 여쭤봤습니다.

강 : 그렇죠. 지지한다면 내가 처음부터 들어가서 막 지지하고... 그랬겠죠.

허 : 라이언 군단장이 박정희의 전력이나 그런 걸 물어 봤을때 그래도 반공주의 면에서는......

강 : 그건 내가 우리 군대에 장교들의 대해서 누군 이렇고 누군 저렇고 말하기가 싫었어요. 외국사람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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