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이처럼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라 하여 이를 총칼로 전복시키고 들어선 군사 정권과 그 연장인 현 공화당 정권이 5년이란 장장 세월간에 과연 얼마나 ‘유능’하고 ‘깨끗’하게 나라를 잘 다스려 국리 민복을 가져왔는가?
그들이 처음 내걸었던 소위 ‘혁명 공약’은 그대로 잘 지켰으며, 민권의 자유가 옹호되고 만백성이 더 잘살게 되었는가?
정복을 당한 내가 말하기보다 이에 대한 가치관을 1964년 1월 5일 박순천(朴順天) 씨가 삼민회(三民會) 대표로 국회에서 발언한 정책 기조 연설에서 들어 보기로 하자.
“5‧16은 일부 극소수 군인이 정권욕에 사로잡혀 헌정을 중단하고 군사적인 독재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4‧19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독재의 재등장이라는 의미에서 5‧16은 4‧19에 대한 반대 사태다. 현 정권이 곧 군정의 연장이다. 1960년 9월 10일 서울 충무가(忠武家)에서 밀회하여 쿠데타를 음모할 때는 장 정권 성립 후 불과 18일만인 만큼 이것은 ‘혁명’이 아니고 의거도 아닌 정권 획득을 위한 쿠데타다. 5‧16 군사 쿠데타의 명분은 허위였으며 그 이념과 공약이 양두 구육(羊頭狗肉) 격이었고, 그 뒤로 정권욕에 시종해 왔다. 현 여당의 거대한 조직비, 사무 당원 유지비, 사상 유례 없는 추악한 매수, 선거 자금, 야당 파괴 공작금, 비밀 정보비 등 막대한 정치 자금의 출처가 어딘가…?
쿠데타의 논공 행상식으로 창설된 기관과 채용된 공무원 증가는 5‧16 당시에 비해 약 4만 명이 증가되었다. 군사 정권 유지를 위하여 수도 방위 사령부, 중앙 정보부 등을 만들어 경찰 국가화하고 국민을 공포 분위기 속에 몰아넣었다. 논공 행상 또는 정치 자금 조달 방법에 의한 특혜 등은 삼성 재벌 등 기개인의 치부를 낳고 대부분 국민의 경제적 희생은 물론 중산 계급의 몰락을 초래했다….”
이만하면 노련한 정치인으로서의 5‧16의 평가가 역력히 드러났다.
군정 이래의 민권 억압, 통화 개혁, 고리채 정리 실패, 4대 의혹 사건, 주체 세력간의 갈등, 암투, 번의, 군인 데모, ‘완전 범죄형 부정 선거’, ‘대량 사면령’, 학원‧언론 탄압 등등 구악을 뺨치는 신악이 구정치인을 무색케 할 정도며, 민생고는 갈수록 가중하여 집단 자살이 연일 신문을 뒤덮었으니, 이것이 과연 쿠데타를 합리화시키기에 흡족한 ‘유능’하고 ‘깨끗’한 정치의 모습인지 국민이 이미 각자 판단을 내리고 있거니와 좀더 긴 안목으로 사가(史家)들의 평가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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