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序頭)에
나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정계에서 물러선 지 어언 6년, 이날 이때까지 침묵의 세월로 살아왔을 따름이다. 이미 끝나 버린 사람을 두고 세상은 그동안 지나친 관심과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특히 군사 정권은 부패와 무능과 구악의 대명사로 우리 민주당을 해치웠거니와 우리는 그것이 허위든 사실이든, 어떠한 악선전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켰다.
역사는 일시적인 승자를 위한 것만은 아니며, 장구한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에 사실(史實)의 진실성을 가려내고야 마는 법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괴로움을 되씹으면서도,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정작 왜 할말이 없었겠는가. 말할 때가 아니고, 말해서 우리 국민에 대한 과오나 역사에 대한 책임이 속죄되리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운명적인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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