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대중
사람들은 왕왕 가톨릭 교회를 귀족이나 자본주의의 ‘앞잡이’로서 가난한 이들은 돌보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런 따위의 비난은 자주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으로 되풀이된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특히 비그리스도교국에서는 이런 비난에 귀를 기울이는 인텔리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릇된 편견은 가톨릭 교도가 노동 계급의 이익의 참된 보호자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즐거이 노동자가 되는 길을 택하였고, 교회가 여러 세기를 거쳐 온 세계에서 노동자와 가장 불우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크게 애쓴 사실을 보여주도록 힘씀으로써만 시정될 수 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인간은 동포라는 관념, 또 개개의 사람 속에는 그의 인격적 존엄과 그 영원한 운명을 시인하는 입장, 이런 것이야말로 비그리스도교 노동 사회에 참된 뜻을 가지는 것이다. 노동 문제를 특히 강조하는 교회의 사회 교설(社會敎說)은 꼭 노동자에게 전해야 한다. 가톨릭 노동 지도자들은 여러 교황의 사회 구칙(社會舊勅)에 포함되어 있는 기본 원리를 넓게 펴고, 수단과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것을 실행해야 한다.
어떤 비그리스도교국에서는 조직하여 가는 노동 운동이 엄격한 관리 밑에 놓여 있으므로 노동 조합은 명목뿐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는 그리스도교 노동자는 조직자로서, 신임 집행 위원으로, 법률 고문으로서, 교육자로서, 저널리스트로서 노동자에게 희생적인 봉사를 하고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봉급 생활자의 복지에 절실한 관심을 가지는 것, 교회가 충분한 급료를 요구하는 권리를 그들에게 인정하는 것, 마지막으로 정의, 선의, 충성이야말로 사랑의 자연적 권리를 공정하게 다 행사하는 데 절대 필요한 수단임을 봉급 생활자에게 보여주는 그리스도교 지도자의 이상과 태도이다.
기술적 원조
비그리스도교국에서 흔히 쓰는 포교 방법은 교회가 사람의 영적 행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임시로 하는 원조의 봉사 외에는 그의 물질적 이익을 소홀히 다룬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비그리스도교의 정신에 있어서는, 특히 그들이 심각한 불행 속에 살고 있다면 종교는 그들의 나날의 극심한 생활과 관계가 없는 인연이 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교회는 보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그 우정을 보여주고, 그 물질적 행복을 늘려 주고, 이에 충고와 원조를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긴 가장 필요한 원조의 하나는 나날의 생활과 관련된 분야에서 기술적 훈련을 주는 것이다.
㉠ 돈 보스코의 모범을 따라 살레시오 회원이 조직한 것 같은 직업 교육 센터를 세울 것.
㉡ 이러한 센터에서 훈련된 지도자에게 그 활동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시설을 공급할 것.
㉢ 특히 스스로 그 경험을 할 수 있는 농부와 노동자를 위하여 직업 협동 조합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소규모에서 시작되지만 장래를 내다보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가톨릭 지도자와 비가톨릭 교도가 친밀하게 협력한다는 것은 반드시 교회의 참된 정신을 잘 이해시키고 더욱 그것을 존중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동시에 교회는 그 생활 수준을 높임으로써 그 관계하는 나라에 크게 봉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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