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인 출판 효과
과연 내가 알고 싶던 모든 의문이 가장 조리 정연하게 해설되어 모든 의문은 깨끗이 무산되고 우리 교리를 명확히 자신 있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따르는 희열과 만족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꼭 번역하여 나와 같은 심정의 후진들에게 일조가 되게 하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 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여 초대 평양 교구장인 방(方) 주교의 초빙으로 평양 교구의 일을 잠시 맡아 보게 되자, 원래 프로테스탄트의 본거라고도 할 만한 평양에서 너무나 미약한 가톨릭의 교세를 상승시키자면, 양교간의 진부(眞否)를 확증할 만한 호교서가 절실히 필요함을 통감하고 교구장의 양해를 얻어, 곧 ‘교부들의 신앙’의 번역에 착수했다. 물론 여가에만 쓰기로 한 만큼 전 권을 번역하는 데 2년이 걸렸다.
번역은 완료되었으나 출판은 전혀 가망이 없었다.
일제 시대인 만큼 한국 사람의 출판은 모조리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하며, 이런 미국인 원저의 종교 서적은 허가될 리 만무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후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여 원고를 꽁꽁 묶어 장 속에 깊이 넣어 두었다. 원래 이 원저는 저 유명한 기본스 추기경이 거금 88년 전인 1876년에 초판을 발간하고, 1년 후에 5만 부를 돌파하였고 1917년에는 80여 판에 1백40여 만 부가 매진되고 1960년경에는 1백여 판에 9백 만 부를 돌파하였으며, 각국어로 거의 다 번역되어 무수한 개종자를 낸 명저다.
이 글을 번역만 해놓고 출판을 못하는 안타까움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후, 나는 동성 상업 학교의 책임을 맡게 되어 원(元) 주교님과 윤형중 신부님께 이 책의 출판에 관해 의논한 결과 어느 외국인 신부의 명의를 빌려 출판하기로 했다.
과연 무난히 진척되어 1944년에 우선 초판 3천 부를 간행하였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인지를 몰라 보급이 지지하더니 점차 알려짐에 따라 널리 애독자가 생겨 수년 후에는 프로테스탄트 신도들의 구독 부수가 상당히 많아지고 이로 인한 개종자까지 속출하게 되었다.
그 후, 매진되어 재판이 요구될 때 윤형중 신부의 증보 부록을 추가하여 상·하권으로 재판을 내었다.
그때는 마침 6·25 동란 중이라 전화의 쓰라린 고통과 허탈감을 메우려는 욕구에서인지 이 상·하권까지가 2년 미만에 또 매진되었다.
그 후, 1945년 3판을 준비할 때는 번역 후 벌써 20여 년을 경과한 후라 문체와 용어 등 상당한 수정을 가하게 되어 전문을 다시 쓰다시피 하고, 참신한 체재의 단권으로 증보판 5천 부를 발행했다.
2판 이후는 프로테스탄트와 일반 구독자들의 수요가 격증하여 불과 3년 이내에 매진되고, 계속하여 1957년과 59년에 4판, 5판이 나가게 되어 초판 이래 도합 약 2만 부 가까이 발행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글이 번역된 이래 가장 흔쾌히 생각되는 것은 이로 인하여 불선한 개종자가 모교(母敎)로 귀정한 사실이다.
오직 그들에게 감동의 은총을 내리신 성령께 감사를 드릴 뿐이다.
이제 5판도 거의 매진되고 6판을 낼 단계에 이르렀다. 3판 때 일대 수정을 가한 것도 벌써 10여 년 전 일이라, 그동안 한글 맞춤법, 문체도 많이 바뀌었으므로 이를 현대 지성인의 감각에 알맞도록 다시 한번 근본적인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었을 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바티칸 공의회의 종결을 계기로 원서 내용과 적잖은 대조가 예상되므로 이들에 대한 주석적인 해설이 필요할 것이다.
이 몇 가지 점을 감안하여 공의회가 끝나는 대로 공의회의 모든 새로운 결정을 원서 내용에 관련시켜 조화 증보를 꾀하는 동시에 문체의 쇄신, 부록의 모든 통계표와 한국 교회 연혁 일람표를 현황 그대로 일신 수정하여 6판을 발행할 심산으로 준비 중에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호교서 ‘퀘스천 박스’는 칸웨이 신부님이 60여 년 전인 1903년에 초판을 발간한 이래 오늘까지 1백여 판을 거듭하는 동안 4백여만 부를 발행하였고, 각국어로 번역되어 이로 인한 개종자의 수 또한 헤아리기 어렵다.
이 글은 프로테스탄트와의 비교만이 아니라 가톨릭 교리, 역사, 전례, 사회 문제 등 전반에 걸쳐 문답식으로 모든 질문을 해설한 것으로, 칸웨이 신부님이 별세하신 후 그 문하생들이 현대의 새로운 제 문제까지를 추가 증보하여 완전한 호교 지도서로 등장되었다.
이 글 역시 우리 말로 번역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 벌써 얼마 전부터 교우, 대학생 및 졸업생들의 자진 봉사로 번역이 추진 중에 있다.
상당히 방대한 규모이나 이 청년 사도들의 정열로 불원 완성될 것을 확신하며, 이 역시 바티칸 공의회의 종결 후에 그 내용을 보완 정리한 다음 발행하게 될 것으로 알고, 이 획기적 명저의 역본 출현으로 우리 교회에 한 줄기 새로운 광채가 찬란할 그날을 기대한다.
(196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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