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신앙 썸네일형 리스트형 신앙백서 - 반세기 유서 깊은 호교서 “교부들의 신앙” 2 (1964.05.05.) 획기적인 출판 효과 과연 내가 알고 싶던 모든 의문이 가장 조리 정연하게 해설되어 모든 의문은 깨끗이 무산되고 우리 교리를 명확히 자신 있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따르는 희열과 만족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꼭 번역하여 나와 같은 심정의 후진들에게 일조가 되게 하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 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여 초대 평양 교구장인 방(方) 주교의 초빙으로 평양 교구의 일을 잠시 맡아 보게 되자, 원래 프로테스탄트의 본거라고도 할 만한 평양에서 너무나 미약한 가톨릭의 교세를 상승시키자면, 양교간의 진부(眞否)를 확증할 만한 호교서가 절실히 필요함을 통감하고 교구장의 양해를 얻어, 곧 ‘교부들의 신앙’의 번역에 착수했다. 물론 여가에만 쓰기로 한 만큼 전 권을 번역하는 데 2.. 더보기 신앙백서 - 반세기 유서 깊은 호교서 “교부들의 신앙” 1 (1964. 03. 29.) 번역 출판 경위와 개정판 구상 신앙 생활의 반려 전교생 120명 중 내가 유일한 천주교 신자임을 알게 되었다. 대다수가 무종교자요 프로테스탄트 신자가 4, 5명 있을 뿐, 종교 문제는 교내에서 별로 화제에 오른 일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서 유명한 설교자 현(玄) 목사가 수원 3·1교회에서 부흥 운동차 내려와 연일 연야 그의 독특한 웅변으로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현 목사는 원래 웅변가로서 설교 중에 독립 사상을 교묘히 고취하여 젊은 학도들의 정열을 자극하고 항일 의식에 피끓게 하였다. 수원 농림 학생들은 너도 나도 현 목사의 설교를 듣고자 수십 명씩 짝을 지어 예배당으로 내왕이 빈번했다. 일제 억압하의 울분도 풀 겸, 허탈한 공허감에 신앙의 양식도 맛볼 겸 감격과 흥분의 회오리바람에 쓸려 학업도 제..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