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중 썸네일형 리스트형 회고 - 대채로운 업적 (윤형중) 윤형중(尹亨重, 신부) 고난의 길 앞장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장면 박사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양친이 다 독실한 신자였고, 그러한 가정에서 자란 장 박사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일반의 사표가 되었다. 약관에 벌써 확고한 신앙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었던 모양이다. 기미 3·1 운동을 전후하여, 그는 서울 용산 신학교의 선생이었다. 그때의 신학교라면 마치 교도소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장 박사는 일본 말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러나 일본 말만 가르치는 선생은 아니었다. 외부 사회와 격리된 신학생들에게 3·1 운동의 진상을 들려주었고 암암리에 민족혼을 고취했다. 장 박사 나이 20여 세였다. 그가 신학교에서 가톨릭 신자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게 된 것은, 일찍이 일본인 소학교를 다녀 매우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