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 후보의 액운 썸네일형 리스트형 Ⅱ. 부통령 시절 - 잇따른 부통령 후보의 액운 끊임없는 감시 속에서 실권 없는 부통령직에 앉아 있기가 바늘 방석이었다. 이제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59년 10월 26일, 민주당으로서는 입후보자 지명 대회를 열게 되었다.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 박사와 함께 러닝 메이트로 선출되기까지에는 약간의 잡음이 당내에서 떠돌았다. 소위 신‧구파의 세력 다툼이 조금씩 고개를 들게 된 슬픈 사실이다. 실제적으로 민주당 내의 신‧구파 문제는 창당 시에 이미 그 씨가 배태(胚胎)되었던 것이다. 민주당이 결성될 무렵에 한국 민주당의 후신인 민주 국민당은 국회에서 15석밖에 차지하지 못하여, 당시 그대로는 도저히 야당의 구실을 할 수 없었다. 이 민주 국민당이 발전하여, 대(大)야당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신진들과 합세하여 신당을 결성해야 할 운명이었다. .. 더보기 이전 1 다음